2019년 12월 송구영신예배 빛의 은혜가 가득한 새해(잠6:20-24)
말씀 : 잠6:20-24
제목 : 빛의 은혜가 충만한 새해
1.빛의 은혜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또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도 여러분과 가정과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과 여러분들의 자녀와 우리가 교회와 이 나라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이 온 땅위에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옆에 분들과도 축복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화와 건강과 풍성함이 넘치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 속에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건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냥 희망과 위로를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소망과 위로가 있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 속에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잠4:18절 보세요.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보세요.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돋는 햇살, 아침 햇살이지요. 어둠을 뚫고 태양이 솟아오를 때처럼 마침내 빛의 은혜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태양이 점점 떠올라 마침내 온 세상이 말 그대로 대낮같이 밝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빛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길입니다. 의인이 누굽니까? 주님을 따르는 자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따른다고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빛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빛과 같은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말씀을 등불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려면 오직 말씀따라 가야 합니다.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고 복된 길이고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빛의 은혜를 누리려면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빛을 향해 가지 않고 어둠을 향해 가면서 빛의 은혜를 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과연 빛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은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빛입니까? 오직 말씀 밖에 더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무엇이 인생의 등불이 될 수 있습니까? 과학이 등불이 될 수 있나요? 지식이나 문화나 철학이 등불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생명의 도를 압니까? 어떻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압니까? 어떻게 영적 정신적 윤리적 육체적 물질적 모든 문제를 알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없잖아요.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셔서 우주만물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고 하실 수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주만물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우주와 생명과 인간이 어떻게 출발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의 실상은 어떤지,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시고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래서 그걸 알려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의 완전하고 유일한 등불인 것입니다.
오늘 23절을 보겠습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보세요.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는 생명의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에 보면 사람들이 뭐 좀 안다고 속된 말로 까불고 있습니다. 뭐 좀 알게 되었다고 교만해져서 꼴난 인간의 이성과 지성과 경험을 성경위에 두고 그래서 성경을 아예 무시하거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 멋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적용하며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할 수 있다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합니까? 이 광활한 우주만물 속에서, 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기들이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훅 불면 한방에 훅 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어리석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귀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세상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유일한 생명의 말씀인 주님의 말씀을 등불로 삼고 천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잘 달려가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오직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을 등불로 삼았으면 이제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안 그래요? 말씀을 등불로 삼고 그걸 따라가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습니까?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지 않습니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만 말씀말씀 하면서 안 따라가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유일하고 완전한 등불인 말씀을 따라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우리의 심비에 완전히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나를 인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말씀이 내 심비에 콱 새겨져 있어야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말씀이 내 마음에서 희미해지지 않고 그 말씀 따라 살 것 아닙니까? 만약 말씀이 내 영혼 속에서 희미하고 도리어 세상의 것들이 각인되어 있으면 말씀따라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것을 따라 살게 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내 마음 속에 말씀이 새겨져 있지 않고 세상의 돈과 명예와 세상 즐거움과 부귀영화가 새겨져 있다면 무얼 따라가겠습니까? 말하나마나 세상 따라 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 21절을 보십시오.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여기서 새긴다는 말은 말그대로 절대 지워지지 않도록 돌에다 철필로 새기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심비에 새겨 넣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세상 즐거움이나 향락이나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말씀이 희미해지지 않고 자신을 인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말씀을 심비에 새겨 넣음으로 환난이나 핍박이나 조롱이나 그 어떤 시험 앞에서도 그 말씀이 자신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네 목에 매라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가까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이 눈앞에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그냥 말씀이 항상 눈앞에서 어른 거려 결코 딴 짓을 못하고 늘 말씀을 따라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아비의 명령, 어미의 법이란 물론 부모님 개인적인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죽어도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나 세상 즐거움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 오직 말씀 안에서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잖아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인데 그 안에 있어야 생명의 은총을 누릴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올 한해를 살아갈 때에 오직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말씀이 심비에 콱 새겨져서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말씀 안에서 말하고 말씀 안에서 살아감으로 이 죄와 무지속에 있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상황과 도전과 위협과 왜곡된 가치관을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위로와 소망과 승리를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말씀 안에 살아갈 때 승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 안에 살아가는 자는 분명히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22절을 보겠습니다.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보십시오.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에 그 말씀이 너를 인도할 것이다. 잘 때에 보호한다.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 심비에 새겨져 있으면 심지어 우리가 잠이 들어 있어도 그 말씀은 잘들지 않고 우리를 보호합니다. 말씀과 은혜가 우리 심비에 새겨져 있으면 잘때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칩니다. 잠자리가 평안합니다. 꿈도 행복한 꿈이 꿔집니다. 그러나 심비에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이 새겨져 있으면 마귀의 꿈을 꾸게 됩니다. 깨어 있을 때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깰 때에 더불어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 그대로 말씀이 심비에 새겨져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것이 우리를 인도하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속에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새겨져 있으면 그 말씀이 나의 생각을 통제하고, 나의 말을 통제하고, 나의 행동을 통제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보호하셔서 우리를 거짓과 어둠과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나를 인도하고 보호함으로 생명의 사람, 진리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4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무엇이 너를 지킬 것이라고요? 명령, 법, 훈계 즉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고, 악에서 지켜주어 생명의 길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심비에 콱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감히 어떤 어둠의 세력이 속된 말로 까불겠습니까? 설령 까불어도 한방에 때려 눕힐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교묘하게 유혹하고 속삭여도 대번에 알아채고 사탄아 물러가라 소리치며 쫓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과 진리와 의가운데 살아가도록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위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정말 우리 인생의 유일하고 완전한 등불이며 빛이며 진리이며 안내자이며 보호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도전과 시련과 환경과 상황을 주님의 권능과 지혜로 이기고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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