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요 17:1-5
김재남
토즈라고 하는 신학자는 자아발견의 제일조건으로 “내 소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금 나의 소원이 고상한 것인가, 아니면 저급한 것인
가? 남이 알아도 자랑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남이 알면 부끄러운 것인지 그것으로 자신
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소원, 나의 기도 제목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거룩한 기도가 있는 자가 되라
고 명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
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절)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 신학적
으로는 이를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대제사장 기도라고 부릅니다. 왜 요한사도는 겟세마
네 동산에서의 기도보다는 이 기도에 더 비중을 두고서 있을까요?
그것은 이 기도가 지니는 독특한 힘 때문입니다. 그 힘은 다름 아닌, 눈앞에 닥친 엄청
난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앞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기도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는 마가나 마태나 누가가 복음을 기록할 시대와는 사뭇 다른 핍박의 시
대였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생명을 잃을 처지에 누구나 노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보다는 마가
의 다락방에서의 주님의 기도가 훨씬 당대에 크게 공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유대 땅에서는 밀과 포도 농사가 주종을 이룹니다. 평지에서는 밀을, 산지가 많은 지방
에서는 포도농사를 합니다. 산지는 특히 돌이 많습니다만, 오히려 그 돌 때문에 포도 농
사가 더 잘 됩니다. 비가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그 건기에도 밤이면 공기 속에 있는 수증
기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이슬을 만들고, 이 이슬들이 모여서 포도 성장에 필요한 수분
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고난 앞에서도 거룩한 기도를 해야 하는가요? 그것은
그 메마른 현실 속에서도 은혜의 이슬을 만들어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
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
의 덫에 걸려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으로 거듭난 주
의 백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운동산교회목사
서머나교회의 실상
계 2:8-11
김창인
1. 부요의 실상 (8-9)
세상에는 가난한 부자가 있고 부요한 극빈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리석은
부자가 가난한 부자입니다(눅 12:21).
자기를 위해서는 주체 못할 정도로 부자였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
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하였습니다(롬2:28-29). 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면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였습니
다. 서머나 교인들은 가난했기에 교회의 살림도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실상은 믿음이 부요한 자였습니다.
2. 충성의 실상 (10-)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
하였다고 했습니다(히 3:5-6). 즉 모세보다 나은 예수님을 보여 주기 위하여 충성을 예
로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은 주인의 충성이요 모세의 충성은 사환의 충성이라는 겁
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현재도 환란 중에 충성하고 있지만 장차 더 가혹한 환란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 환란에는 10일이라는 기한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목을 내놓고 충성하
라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순교자가 많은 충성된 교회였습니다.
3. 영화의 실상 (1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합니다(요
5:29). 생명의 부활이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믿는 사람들의 부활인데 예수님의 영광
에 참여하여 영생하게 됩니다. 여기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백보좌 심판을 받기 위하여 부활하고 그 결과 영벌을 받게 됩
니다. 이것을 심판의 부활 혹은 둘째 사망이라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에게는 둘
째 사망이 없을 뿐 아니라 주와 함께 영생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환란 중에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영화로운 몸으로 영생하
게 된다는 뜻입니다.
광성교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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