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예배설교] 가장 큰 지식
제목 : 가장 큰 지식
말씀 : 벧후3:14~18
우리는 물론 가장 좋은 것, 가장 행복한 것, 가장 기쁨을 줄 수 있는 것, 가장 멋진 것,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라본다. 그래서 금은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하게 되면 한 번 더 보게 된다. 멋지게 지어 놓은 집이 있어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차도 크고 멋진 차가 지나가면 보게 되고, 예쁜 꽃이나 예쁜 사람이 있어도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된다. 왜 그런가? 웬지 그런 것들이 좋아보이고, 또 뭔가 기쁨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 기쁨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 게 뭘까? 물론 주님이시다. 주님이 주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이다. 물론 세상의 것들도 기쁨을 주긴 하지만 그건 별거 아니다. 진짜 기쁨도 주지 못하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지도 못한다. 도리어 그런 것들 바라보다가 실망만 느끼고 거기에 얽매여 자유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시기와 질투에 빠지기 쉽고 그러다가 진짜배기는 놓치고 헛것만 따라다니다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기 십상이다.
1.인생의 궁극적 목적지, 목표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것을 바라보나니..’ 이것은 앞 절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가 오직 바라보아야 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 여기서 바라본다는 것은 ‘기다리다, 찾다, 기대하다.’는 뜻으로 진정한 목표와 소망과 기쁨이 되는 대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열심히 찾고 그야말로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렇게 목을 길게 빼고 소망하고 사모하고 기다리며 열심히 찾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이다. 당연하지 않나?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의 풍성함과 은혜와 기쁨과 감격과 평안을 줄 것이 무엇이 있겠나?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건강이나 권세나 영광은 결코 우리에게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가지고 있는 동안도 온전한 생명의 기쁨을 주지 못하거니와 그야말로 다 쇠하고 썩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이다. 우리의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지도 못하고 온전한 평안과 기쁨과 은혜와 소망도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들이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 저 영광의 나라는 다르다. 그 나라는 시간적으로는 영원하고, 질적으로는 완전하고,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즉 전인격적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의 기쁨을 제공한다. 말 그대로 어떤 어둠도 아픔도 슬픔도 미움과 시기도 싸움도 죽음도 없는 곳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행복의 나라이다. 그래서 오직 이 영광의 나라만이 진정한 우리의 소망이고 희망이다.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도 평안과 기쁨과 위로 속에 살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모든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근심 걱정과 미움과 증오와 원망과 불평도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다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다가 영광의 나라를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2.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의 삶.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새 하늘과 새 땅임을 말씀하신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흠없이 평강가운데 서도록 힘써야 함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주님 앞에 서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점이란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을 말하고, 흠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점은 더럽고 속되고 추한 것이 추가된 상태이고, 반대로 흠이란 책임과 의무와 사명과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물론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100% 안하고, 해야 할 것을 100%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면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이나 풍조와 습관이나 문화에 빠져 할 일을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힘쓰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성실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삶을 살도록 힘은 써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진실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주신 사명 감당해야 한다. 더럽고 추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생활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의 향기를 나타내고 주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 앞에서 잘 했다 칭찬받고 상급 받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인내로 주님의 때를 기다려야 함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이것은 주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물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재림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알라는 것은 앞의 9절 말씀처럼 주님이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빨리 오시지 않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바울도 그와 같이 썼고, 그 중에 풀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는 것은 바울 서신 들 중에서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들을 말한다.
실제로 바울은 살전후서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재림에 관하여 말씀했다. 특히 살전4:16,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주님의 재림은 너무나 분명한데 그 과정이나 방법 등은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고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라서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해서 혼자 연구를 하거나 무슨 이상한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냥 말씀 그대로 믿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천국과 지옥에서의 삶의 모습들, 이런 것들은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것 밖에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어떤 목사님들이 요한계시록을 그럴듯하게 해석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는데 그러나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는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성경대로만 믿으면 충분하다. 공연히 영적 호기심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연구하다가 이단이 나오고 삼단이 나온다. 그래서 실족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들도 어떤 때보면 성경의 어떤 사건이나 말씀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따지기도 하고 의문을 품기도 하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결코 성경에서 넘어가면 안된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전4:5,6절에서 말씀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때나 방법에 대하여 혹은 천국과 지옥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혹은 성경의 여러 가지 사건이나 말씀에 대하여 그냥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만큼만 그대로 믿으라. 그것으로 생명력 있는 믿음 생활하기에 충분하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공연히 자기 생각과 이성과 지식과 경험으로 억지로 풀어보려고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안 가르쳐 주신 것은 몰라도 된다. 몰라도 되기 때문에 안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냥 순진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씀그대로 믿고 그러 성실하고 진실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감으로 주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운데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함으로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섦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세세토록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자.
3)미혹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벧후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엉뚱한 소리를 하여 자신도 멸망의 길로 가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왜곡된 뜻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다른 사람까지도 미혹시켜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런 미혹자들을 잘 분별하여 절대로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것도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때로는 신학자들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사람들이 다 짜깁기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중에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것은 사람의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 운운하면서 성경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을 미혹하기도 한다. 이단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어떤 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어떤 자들은 기도하다가, 어떤 자들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시를 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경도 제멋대로 해석하여 그럴듯하게 꾸며낸다. 그리고는 신비한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런 영적인 미혹 뿐 아니라 왜곡된 사상과 가치와 관습과 문화와 과학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한다. 마귀사탄은 한편으로는 온갖 음모술수를 꾸며 공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이좋게 놀자며 화전양면작전을 구사하며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는 믿지 말라. 성경에서 넘어가는 것은 배격하라.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서,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만, 성경의 내용 그대로 믿으라. 누가 어떻게 미혹하고 유혹하고 별의별 소리를 다해도,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믿어야할 건 오직 성경뿐이다. 성경만이 완전히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자이다. 유일한 법전이다. 유일한 인간 사용설명서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의 검증을 받고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믿고 따름으로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자.
4)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함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마지막 결론적 말씀이며 권면이다. 이것이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하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하고, 무법한 자들이나 세상의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관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거짓 영들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의 은혜와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야 하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혹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가 가운데 자라라는 것은 더욱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하심과 인도하심과 지금까지 때를 따라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신 그 은총을 바르게 알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속에 주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맡기고 그 방법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은혜가 충만한 자의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 삶이 더욱 힘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고, 열심이 있고 감사가 넘쳐나고 그렇게 되면 더욱 감사와 기쁨으로 섬기게 된다. 그 은혜와 능력으로 대적자들의 미혹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런데 은혜와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말씀 없이 은혜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단은 말씀을 가까이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말씀을 바르게 알아야 올바른 믿음 생활이 가능해진다. 말씀 없는 은혜는 자칫하면 속을 수도 있다. 올바르지 못한 신비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 은사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의 신앙적 관점에서 은혜를 생각할 수도 있다. 마귀사탄은 이런 허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엉뚱한 길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 위에 든든히 선 상태에서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면 진정으로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 분별력 있는 신앙인이 된다. 속지 않는다. 그래서 마귀 사탄이 감히 덤벼들 생각도 잘 못하고 혹시 덤벼들어도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물리치고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힘 있게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다른 무엇보다도 주님의 은혜와 말씀 안에서 자라나기를 힘써야 한다.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영광을 위하여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는 것보다 말씀의 바탕 위에서 은혜가 충만해지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 힘써야 할 일이고, 정말 영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생명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더욱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힘씀으로 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남으로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주님 앞에 나타나기를 힘쓰고, 내 방법,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대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각자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하며 겸손히 주님과 동행할 때에 여기서도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다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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