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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한국 복음통일 선교TV - 교회의 사명/ 사도행전 1장 8절 사도행전강해


오늘 이 구절은 아마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씀일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다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그 본질에 충실할 때 교회다울 것입니다. 성경은 전도와 선교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교회가 선교라는 용어를 도입했는데, 전도가 주로 자국민에게 하는 것이라면, 선교는 주로 타국민에게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비춰보면 ‘선교’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교회의 사명인 ‘선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세계 선교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일을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1:38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그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이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이 땅에 40일을 머무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주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복음 전도가 하나님 나라의 일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복음 증거하는 일을 생명 걸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증인’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증인’이란 단어는 순교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 비전으로 미쳐 있었습니다. 아니 그 하나님 나라 비전이 그들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도 행20:24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는데, 그도 또한 얼마나 복음에 미쳐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와 같이 목숨을 걸고 순교적 삶으로 복음을 증거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계속 존속되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대로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 모든 열방들을 동일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 한국도 이런 열심 있는 전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믿음을 통한 행복을 누리고 있음은 전적으로 우리 선배들의 전도와 사랑에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 미친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말년에 잠비아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1871년 헨리 스탠리라는 탐험가가 리빙스턴을 찾아내기 위해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1년 만에 겨우 밀림 속에서 병들어 앓고 있는 리빙스턴을 만났습니다. 식료품과 의약품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스탠리는 그에게 간절히 권면했습니다. “선교사님, 아프리카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30년간 헌신해 오셨으니까 이제 그만하시고 저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던 리빙스턴은 아주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게 아프리카의 선교 사역은 헌신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특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영광스러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873년 5월 1일, 리빙스턴은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깍지를 낀 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교에 대한 열정이 아프리카의 수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선교하기 위해서 세운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인식하고 계속 이어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왔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렵고 힘겨웠어도 그 이유 때문에 감당해 온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그리 큰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아주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선교사님 두 가정과 그 외 여러 선교사들, 또 교회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또 여러분의 헌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드린 헌금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분명히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고, 또 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교헌금을 작정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더욱 힘을 내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드립시다.
여러분, 리빙스턴이 말한 것처럼 복음 증거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이 일에 우리가 동참하는 일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교사로 나가면 이보다 복된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선교사를 보내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함께 동참한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빌1:3-7 참조).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빌4:18).
그렇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풍족한 가운데서 드린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 물질로 복음을 위한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그리스도인과 그의 몸된 교회는 복음을 열방에 전해야 하며, 또한 그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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