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주일 낮 예배 설교] 성령강림절 / 성령을 따르라

 

 

 

제목 :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씀 : 갈5:16-24

1.육신의 지배 속에 사는 인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납니다. 살인사건, 성폭행사건, 폭력사건, 강도사건... 또 국가 간에도 전쟁과 억압과 착취와... 심지어 옛날에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노예를 삼아 짐승처럼 부려 먹기도 하고.... 하기야 요즘에 보니까 어떤 섬에서는 외국인들을 데려다가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임금도 제대로 안주고 부려 먹기도 한다는 군요. 하기야 남나물 콩나물 할게 뭐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서로 편이 갈라져 쌈박질이나 해대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왜 비 인간적이고 비 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인생들이 육체에게 지배당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영혼이 심각하게 병이 들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육신의 소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이하의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1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마땅히 영혼이 마음과 몸을 다스리며 아름답고 가치있게 살아가야 하는데 정신과 영혼이 죽어 있어 육신의 지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라는 단어입니다. 이 육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savrx(사르크스)인데 이 말은 단순히 육체를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몸과 더불어 거기에 깃들여져 있는 어떤 육체적, 정신적 욕망까지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라고 말할 때 육체의 일이란 단순히 몸으로 하는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육체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바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한 것 등등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서 우리는 우리인생에게 발생되는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느냐하면 우리 인간이 육신의 정욕에 지배당하여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마땅히 육신과 정신이 영혼의 지배를 받아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영혼이 죽어 있어 육과 정신이 미쳐서 엉뚱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인간으로서의 참된 가치와 의미와 기쁨과 고귀함을 누리지 못하고 무가치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인생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21절 하반절 보세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어떻게 된다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로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영혼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로봇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 안에서 움직일 때만이 올바른 기능을 하게 됩니다. 로봇을 구성하고 있는 몸체들이 제작자가 구성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때에 로봇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고장나 로봇의 몸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이 로봇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고쳐서 쓸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끝까지 말썽을 부리면 폐기처분 당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통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몸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 움직일 때 인간은 올바르게 제 기능과 역할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복되고 가치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고장난 로봇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과 술수와 우상숭배와 원수 짓는 것과 분쟁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수많은 죄악들이 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시대의 이 문제의 핵심이 육체의 소욕이 영혼의 지배를 떠나 제멋대로 움직이는데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은 결코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주셨던 그 순수한 영혼이 여러분을 지배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혼이 우리의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감으로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은혜의 길을 잘 달려가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가치를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가져다 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영혼의 지배를 따라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16,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죄된 본성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끊임없이 죄의 길로 내 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좇아 행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에게도 죄된 육신의 소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음으로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이 죄된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끊임없이 자신 쳐서 복종시켜 성령의 소욕을 따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지요. 죄된 본성이 우리에게 있고, 그것이 우리를 자꾸만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게 하는데 그러기에 어찌 하든지 성령의 소욕을 따라야 하겠는데 그 놈의 죄된 본성 때문에 그게 잘 안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어찌하든지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성령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서 죄된 본성을 쫓아내서 그것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는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 안에 가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전자에 맑은 물이 들어 있으면 맑은 물이 나오고, 흙탕물이 들어 있으면 흙탕물이 나옵니다. 단물이 들어 있으면 단물이 나오고, 쓴 물이 들어 있으면 쓴물이 나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들어 있으면 사랑이 나오고, 미움이 들어 있으면 미움이 나옵니다. 원망과 불평이 들어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감사가 들어 있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성령이 가득차 있으면 성령의 행실이 나오고, 세상의 영이 가득차 있으면 세상의 행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5:17,1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육체를 따라 세상의 엉뚱한 것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성령님이 충만하니까 당연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은혜의 길로 잘 달려가 생명의 은총을 온전하게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지배를 벗어던지고 성령을 좇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려면 어찌하든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생활을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지배 속에서 의의 길, 진리의 길을 달려갈 때에 더욱 은혜와 기쁨과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의 모습.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지배가운데 들어가면 이제는 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전에 육체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존재, 새로운 가치,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향,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인생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삶인 것입니다.

고후5: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나를 억누르고 있던 옛주인 마귀사탄이 쫓겨나가고 진리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새 주인이 되므로 육신의 소욕을 따르던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전혀 새로운 인생이 전개됩니다. 과거에는 사탄의 권세 아래서 내가 주인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사탄이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아 내 이성과 지성과 경험대로 살면 내가 왕노릇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는 대로 행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길로 갔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습니다. 내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세상이 가는대로 갔습니다. 세상의 조류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죽어라고 그 길이 맞다고 여기며 고집을 피우며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도리어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며 심지어는 핍박하며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죄의 노예로 살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이시며, 진리의 영이시며, 은혜의 영이신 성령이 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쫓겨가고 죄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마귀사탄의 역사로 내 안에 들어와있던 죄와 어둠과 죽음과 권세가 물러갑니다.

그런 죄와 어둠과 마귀의 권세가 물러가니 영혼과 마음과 눈과 귀가 밝아집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바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추악한 모습들이 밝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광이 나라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드디어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 집니다. 그래서 드디어 생명의 열매,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면 세상의 온갖 죄되고 잡다한 것들이 물러가고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령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열매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거듭남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알고 믿고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죄사함과 새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이 핵심적인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은 결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새생명을 얻게 되면 그 새생명을 가진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선과 진리와 거룩함을 향하여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바랍니다. 더욱 깨어 기도하며 말씀묵상하며 열심히 찬양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빛의 은혜를 받으려면 빛을 가까이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물을 마시려면 물가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성령께서 어디에 임재하십니까? 말씀과 기도와 찬양하는 곳에 임재하시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쓸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말씀을 전할 때에 그 가정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았습니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님을 정말 더욱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힘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더욱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성령충만함을 받아은 생활과 열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임과 동시에 어버이 주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성령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은 것을 방언받고, 병고치는 은사받고, 예언하고 맨날 기도나 하고 찬양이나 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서 끝난다면 그건 성령 충만 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지배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마땅히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부모님 공경이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입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기도 잘하고 찬양 잘하고 예배 잘 드려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 관계에 대하여 주신 첫 번째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며 어찌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드리거니와 성령 충만함은 결코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예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의 삶속에 접목시켜야 합니다.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이며 동시에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무지와 어둠 가운데 있는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우리를 언제나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위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아래로 사람들을 잘 섬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충만히 맺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과 함께 생명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온유랑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
반응형

 [성령강림절설교] 성령 받은 자의 복

 

 


제목 : 성령 받은 자의 복

말씀 : 사61:1-3

1.사람은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문제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예수님이외에는 누구에게나 어떤 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천하 없는 고관대작이나 억만장자나 영웅호걸이나 성인군자라도 다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착하고 멋있는 남편과 사는 친구가 부러워서 ‘너는 그렇게 착하고 멋있는 남편하고 살아서 참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좋기만 한지 일주일만 살아봐라. 얼마나 답답하고 속 터질 때가 많은지...’ 이거 큰 일 날 소리 아닙니까? 자기 친구에게 자기 남편하고 일주일을 살아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하튼 아무리 착한 멋있는 사람이라도 문제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졌던 다윗은 간음죄를 저지르고 그 가정에 너무나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은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갔다가 아내 사라가 너무 예뻐서 자기를 죽이고 사라를 빼앗아 갈까봐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고 자기 살 궁리를 하였습니다. 기독교역사상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사도 바울도 평생에 육신의 병을 안고 살아야 했고, 너무나 많은 환난을 당했던 것을 물론 심지어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조차 배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은 너무나 많은 여인들로 말미암아 심지어 우상숭배를 허락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속에 죄와 무지와 연약함이 들어 있는데 어찌 문제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롬3:10~12절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많은 문제 속에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그건 한마디로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에게 문제는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문제 때문에 근심 걱정 원망 불평하지 말고 문제를 이겨 나는 것입니다. 강이 있으면 강이 있음을 탓하지 말고 배를 타고 건너든지 다리를 놓고 건너든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높은 산이 있으면 산이 있음을 탓하지 말고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든지 굴을 뚫고 지나가든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안 되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무조건 다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안되는 건 그냥 문제를 끌어안고 친구삼아 살아가면 됩니다. 문제가 있다고 울고불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증오하고 난리치고 해봐야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것은 그냥 그게 하나님 뜻이려니 하고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면 문제는 있으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23: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니 세상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다윗도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받으면 부족함이 부족함이 아닌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 모두에게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제 때문에 걱정 근심 원망 불평하지 말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지혜를 덧입어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문제들을 넘어서서 승리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성령을 받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겸손히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을 다시 모셔 들이면 죄사함의 은총과 능력과 지혜를 주심으로 얼마든지 문제를 제거하거나 문제가 있어도 문제가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창6:3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들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죄 가운데 빠져 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신의 욕망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과 진리와 평안과 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들을 떠남으로 결국 죽음과 고통과 슬픔과 절망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잖아요. 우리 정신 속에서 이성과 도덕적 가치관을 제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이성과 가치관이 없으므로 결국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살아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령을 불어넣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영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영혼이 파괴됨으로 영적인 생명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누려야 할 모든 영적, 정신적, 물질적 은총을 올바르게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명과 진리와 사랑과 의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문제는 돈이나 건강이나 지식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문제는 영혼입니다. 영혼이 소생해야 인간 전인이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 즉 돈과 명예와 건강과 세상 영광을 구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어떻게 받습니까? 그야 물론 다른 방법 없습니다. 자신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죄사함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생명의 영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심으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하기를 힘쓸 때입니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베드로사도를 모셔다가 온 가족이 겸손히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충만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겸손히 엎드려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 충만 받으면 영혼과 몸과 마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문제가 없어지든지 문제가 있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능력과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됩니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통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다가 식인종에게 붙잡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며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추장 앞에 끌려가게 되었는데 추장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제법 오래 전에 자기가 세운 교회에 한 일 년여 동안 출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선교사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도우셔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고 쾌재를 부르며 당시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를 모르겠느냐, 나 그 왜 어디어디 교회의 목사 아니냐? 그 때 당신이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았었느냐 하면서 아는 체를 했습니다. 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추장은 누군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이제 살았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 추장은 이 사람을 죽여 요리를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깜짝 놀라서 이럴 수가 있느냐?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찬송과 기도도 드리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아직도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느냐, 이러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 하면서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추장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나도 교회를 다닌 후에 많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사람을 잡아먹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도 안 드리고 막 먹었는데 지금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공손히 감사 기도를 드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좀 안다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 거듭나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능력 있는 삶을 살려면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영혼이 거듭나고 더 나아가서는 과거의 악습이나 악행이나 왜곡된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1: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는 것보다, 세상의 어떤 지혜와 능력을 받는 것보다 주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힘씀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 여러분의 영과 마음과 생각이 거듭나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이기고 생명의 기쁨과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성령을 받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건 못 받아도 성령은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우선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거듭나 구원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을 받으면 뭔가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가슴이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지은 죄들로 인하여 눈물콧물을 한없이 쏟고 또 쏟으며 회개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면 찬송이 나왔습니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내 집안 문제 뿐만이라 세계 방방 곳곳에 만민들을 위한 기도가 술술술 터져 나왔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새벽마다 가서 기도하고 회사에서 퇴근하며 오는 길에 교회로 직행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고,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가겠노라고 서원을 했습니다. 그때마나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셨던 내 양을 먹이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직장 그만두고 결국 목회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받았다고 다 뜨거운 감동이 밀려오고, 방언과 예언이 터지고, 기적이 일어나는 등 예사롭지 않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눈에 보이는 이런 어떤 특별한 과정이 없이도 조용히 성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경우가 훨씬 다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정말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이요, 문제투성이 인생임을 고백하고 오직 주님만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이런 죄를 사하시고, 사망권세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어지는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하심인 것입니다.

요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물이란 물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도 물론 받아야 하고 동시에 성령세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은총을 덧입어야만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뭐 너무나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어둠과 무지 속에 있는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겠으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믿겠으며,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니 어떻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겠으며,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어떻게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가 있겠으며, 영혼이 거듭나지 못하면 어떻게 죄와 무지 속에 있는 인생이 올바른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법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성령 받으면 문제가 확 달라집니다. 죄와 무지로 인하여 닫혀 있던 영안이 열리고, 귀가 열립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과 의미를 알게 되어 주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쓰게 됩니다. 그러면 물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성도 여러분은 세상에서 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즐거움을 구하는 것에 앞서서 성령의 충만함을 구히여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더욱 엎드려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생명의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성령 받으면 이 세상의 복도 받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영혼의 은총을 누릴 뿐 아니라 몸과 마음과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게 됩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보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면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 즉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 전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이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한 것, 환경적으로 힘들고 소외당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상태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물질적,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렵던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면 그러한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권자이십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생사화복이 주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부요와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어찌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또한 여러분,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모든 상처가 치유를 받습니다. 보십시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즉 성령이 임하시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상처와 고통과 아픔과 절망 등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을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아픔과 상처와 고통은 궁극적으로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러면 우리 심령속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1절 뒷부분을 보면 성령을 받으면 자유를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즉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물질적 노예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너무나 당연합니다. 죄와 무지로 헛된 것을 섬기던 인생들이 성령을 받게 되면 주님 안에 있는 생명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되니 세상과 마귀 사탄의 권세는 물론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화관으로 재를 대신하고, 기쁨으로 슬픔을 대신하고, 찬송으로 근심을 대신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뭐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성령을 받아 구원의 은총을 입었으니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가난과 죄의 포로 상태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니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영원한 멸망의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오게 되었으니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는 곳에 오직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평안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죄와 무지 속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간적으로 똑똑하고 잘나고 심지어 인품까지 좋아도 결국은 죄와 죽음과 욕심과 불안과 절망의 포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는 나름대로 건전하고 유익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삶도 결국은 세상의 것에 갇혀서 하나님도 진리도 생명도 알지 못함으로 영원한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포로로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서는 술과 담배와 노름과 향락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치 그것을 자유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을 부자라고 여기며 이만하면 족하다하면서 만족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유라고 다 자유가 아니며, 부자라고 다 부자가 아니며, 평안이라고 다 평안이 아닙니다. 진짜 자유는 감사와 기쁨으로 선과 진리와 생명을 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나 진짜 평안이나 만족도 동일합니다. 선과 진리와 의를 따르는 가운데 부요하고 평안할 때에 그게 진짜 부요이고, 진짜 평안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짜 자유, 진짜 평안을 누리는 사람만이 세상에서도 평안과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진짜 부자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8: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또 계3:17절에서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 생명, 진짜 평안, 진짜 자유, 진짜 만족을 누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생명과 진리와 의와 평강과 기쁨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 속에 있는 모든 어둡고 부정적이고 더럽고 추한 것들이 쫓겨 갑니다.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미움 왜곡된 욕망 고통도 다 쫓겨갑니다. 모든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세 등의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나 진짜로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진짜 자유인, 진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한 자유와 평안과 위로와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묵상하며 찬양하며 살아 갈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죄를 비롯한 모든 어둠과 부정적인 것들을 다 이기고 참된 자유와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온유랑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