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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헌신예배]작은 자에게 주신 큰 은혜

 

 


제목 : 작은 자에게 주신 큰 은혜

말씀 : 엡3:7-9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설교를 듣다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설교 듣다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때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점잖은 분들이라서 그런지 그런 말씀하시는 분이 안 계시데요.)

어쨌든 은혜라고 하는 말은 자신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좀전에 말씀드렸던 말씀을 통해서 혹은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는 것도 무언가 자신의 삶에 유익한 무엇을 얻게 되어서 그래서 기쁘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은혜는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실제적인 사건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대학 시험에 합격하였다거나 취직이나 승진이 되었을때, 아프다가 건강을 찾았을 때, 새차나 새집을 구입했을 때에 등등 물질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때 이것도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7절에서는 그와같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은혜와는 좀 다른 차원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이 말씀은 한마디로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꾼이 무엇입니까? 물론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 그 주인의 뜻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 일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에 의하면 그렇게 달갑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누가 남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바울은 일꾼이 된 것을 가장 큰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무언가 나에게 당장 유익한 일이 생겨서, 무슨 경사스런 일이 생겨서, 무언가 물질적으로 좀 보템이 되는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남의 집 일꾼이 된 것을 감사하고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 흔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때처럼 그렇게 인간적으로 좋은 일, 경사스러운 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는 예수님 만나기 이전이 훨씬 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당당한 가문에 높은 지위와 학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있었고, 명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명예와 영광을 누릴 위치에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만큼 은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오히려 이런 것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수없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굶고 추위에 떨고 광야에서 바다에서 강에서 이방인들에게 동족에게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기는커녕 있는 것 마져 몽땅 빼앗겨 버리고 남은 것이라곤 핍박과 고난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전15:10에서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건강하게 잘먹고 잘사는 것 이것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꼭 호의호식하고 만사형통하는 것만이 은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더 고상하고, 더 가치있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은혜,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떤 보람있는 일을 위하여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 나 같은 사람도 누구에게인가 쓸모가 있다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실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를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받아 누리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 누리는 은혜입니다. 가족과 교회와 사회속에서 내가 약하고 부족할때에, 내가 낙심하고 힘들어할때에 남에게서 무언가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받는 은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은혜는 주는 은혜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 마음을 주고, 내 사랑을 주고, 내 힘과 시간과 물질을 드리면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물론 이 두가지 은혜가 다 소중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은혜가 더 크냐고 굳이 따진다면 사실은 후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는 은혜, 베푸는 은혜, 기여하는 은혜, 쓰임받는 은혜 이것이 더 나를 보람있게 하고, 당당하게 하고, 가치있게 하고, 기쁘게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바로 그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그는 받는 은혜속에 살았습니다. 많은 것을 누리는 은혜속에 살았습니다. 그 은혜를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열심히 학문을 연구하였습니다.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이 살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명예도 얻고 영광도 누리고 존경을 받으며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는 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드리는 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말입니다.

과거에 그는 큰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했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권세와 영광과 명예와 존경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하니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것이 왜 그렇게 작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거기에 목숨을 걸었던가 하면서 실소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말씀에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도대체 얼마나 더 작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다는 말은 이미 최상급과 같은 말이거든요. 지극히라는 말이 뭡니까? 어떤 극점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갈곳이 없는 어떤 한계점에 이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자라는 것은 더 작을래야 작을 수가 없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작은 자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과거에 자신만의 영광을 위하여 살던 때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삶이었는지, 얼마나 무가치한 삶이었는지를 절실하게 표현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별로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앞에 사람앞에 별로 내어 놓을 것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결코 인생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언가 나도 남에게 쓸모가 있는, 무언가 나도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나도 무언가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질 때 거기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진정 기쁘고 보람있고 의미있는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더 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누군가 이웃을 위하여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혹은 가족을 위하여 혹은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있고, 거기서 내가 필요한 존재로 인정을 받고, 누군가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기쁜 일이요, 가슴 뿌듯한 일이요, 삶의 의미를 느끼는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을 위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더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오늘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는 일꾼으로 부름받게 된 것이 그렇게도 기쁘고 은혜가 되고 보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설령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해도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너무나 크고, 주님께 받은 바 이 은혜가 너무도 커서 그는 기쁨과 감격속에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속에는 바울이 그렇게 기뻐하고 감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와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자신에게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그 진리의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주셔서 그 생명의 비밀을 세상속에 나타내게 해 주신 사실이 그는 그렇게도 고맙고 감사하고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비밀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밀은 아무에게나 말해주기 않습니다. 아주 가깝고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알려줍니다. 여러분, 저금통장을 아무에게나 맡기고 아무에게나 비밀 번호를 가르쳐 줍니까? 여러분, 금고를 아무에게나 맡기고 비밀 번호를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가르쳐 줍니까?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려 줍니다.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한번 테스트 해보십시오. 누구에게인가 내가 좀 돈이 필요해서 그러니까 통장을 달라고 하면서 비밀번호 좀 가르쳐 달라고 해 보십시오. 그래서 선뜻 통장과 비밀번호를 내 준다면 그 사람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장로님이나 권사님에게 그런 부탁을 하면 선뜻 내 주실지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또 그렇게 감사하고 기뻤던 것입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길래, 내가 뭐 대단한 존재이길래 나를 사랑해 주시고, 나를 믿어 주시고, 나를 택해 주셔서 그 신비한 비밀을 알려주시고 그 비밀을 증거할 자로 세우셨는지 그것이 감사하고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신이 나서 감사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는 세상의 어떤 은혜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 엄청난 은혜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허락하신 것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그렇게 귀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 그것만이 아닙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리의 역사를 위하여,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 또한 우리는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국가를 위하여 부름을 받고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 일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주님 나라를 위하여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을진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맡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생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저금 통장 비밀번호를 나에게 알려준대도, 국가 일급 비밀 서고의 비밀번호를 알려준대도 그래도 대단한 기쁨이요,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 비밀을 세상에 들어내야 할 직분을 맡기셨을진대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전도회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기뻐하며 감사하며 여러분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나 같은 것도 필요가 있어서 나를 일꾼으로 세우셨다는, 나같은 것도 믿어주시고 신뢰하셔서 일꾼으로 세우시고 비밀을 알려주시고 그 사역을 감당케 하셨다는 그 기쁨속에서 그 감격속에서 주님 나라 위하여 함께 힘쓰시기 바랍니다.

비단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여전도회 뿐만 아니라 우리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서리집사님들, 권찰님들, 성가대원들, 찬양단원들, 구역장, 구역권찰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 주님이 나를 불러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인쳐 주시고, 나 같은 것도 그래도 쓸모가 있다고 일꾼으로 세워주시고 그래서 이 복음 사역을 맡겨주셨다는 것, 이 엄청난 일에 쓰임을 받고 있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기쁨과 감격속에 주님의 나라건설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은총을 누리며 기쁨과 은혜속에 주님의 나라를 이땅위에 크게 건설해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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