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티 / 기도 없는 영혼 사랑은 없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진한 자국을 남긴 기도였다. 영혼들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우리도 많은 날 동안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 마음으로 들으셔야 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빛깔 진한 영혼의 외침을 담은 기도가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기도를 했다면서도 기도한 내용조차 머리에 남아 있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겠으며, 마음은 딴 데 둔 채 의무를 때우듯이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어떻게 충천하는 화염과 같은 힘이 되어 악한 세상에서 흩어져 있는 영혼들을 지켜 줄 수 있겠는가? 화려한 수식어구로 치장한 일 만 마디의 형식적인 기도보다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한 마디의 간절한 외침을 담은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커다란 힘과 능력이 있다. 교사로 섬김에 있어서 영혼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의 여부는 여러 면에서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교회학교에 아이들을 많이 모으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변하지 않는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는 헌신은 더욱 더 귀하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진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것은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고난의 죽음을 앞에 두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당신이 맞이하실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죄와 슬픔이 많은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가야 하는 영혼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었다.
그리스도의 이 처절한 기도는 결코 믿음이 없으신 때문이 아니었다. 잡히시던 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통곡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 옆에 가서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 왜 그렇게 슬피 우셔요? 이제 보니 믿음이 별로 없으시군요.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세요."라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우울한 것은 질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적이고 경박한 즐거움이 신령하고 경건한 슬픔을 내어 쫓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영혼을 사랑해 본 사람들은 눈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는 영혼을 불쌍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 자신이 바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섬기는 영혼들을 위해서 이렇게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을 위해서도 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 눈물이 마르므로 많은 영혼들이 피 흘리며 멸망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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