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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유머  죽어야 천국 갑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날 공과공부 제목은 ‘하늘나라에 가는 길’이었는데 공과 공부 중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만일 집을 팔아 몽땅 교회에 헌금한다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일제히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선생님은 “그러면 내가 매월 월급의 반을 떼어 저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주면 천국에 갈 수 있겠죠?” 이번에도 아이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또 “그러면 내가 매일 교회에 와서 청소도 하고 유리창도 닦고 풀도 뽑으며 교회를 섬기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하자 이번에도 아이들은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어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죽어야 됩니다.”

 

좀 동문서답 격인 대답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주 정확한 답변입니다. 첫째는 실제로 죽어야 천국 가는 게 맞지 않습니까? 우리 육신이 죽어야 천국가지 않습니까? 죽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지요. 또한 육신에 속한 모든 정욕과 이성과 경험과 논리와 왜곡된 가치들이 죽어야 천국갈 수 있지 않습니까? 옛 자아가 죽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고 거듭나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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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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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내 그릇대로  


 

 

 

 

 
 


어떤 노인이 소일거리를 겸해 벌을 쳐서 꿀을 땄다. 꿀이 아주 좋기에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빈 그릇을 가져와 꿀을 받아가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병을 가져 와서 꿀을 받아갔다. 어떤 사람은 바가지를 갖고 와서 받아갔고 어떤 사람은 커다란 기름통에 받아갔다. 그런데 그 후에 불평하는 말들이 나왔다.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나는 가져 온 그릇대로 가득 채워 주었을 뿐이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성품, 즉 그릇의 크기다. 내가 어떤 그릇이 되느냐에 따라 담기는 축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그릇을 이야기 할 때 큰 그릇과 작은 그릇, 깨끗한 그릇과 더러운 그릇으로 구분 짓는다. 큰 그릇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태연하게 잘 대처한다. 작은 그릇은 작은 일에도 잘 흥분해 일을 망치는 사람들이다. 결국 큰 그릇은 범사가 형통케 되지만 작은 그릇은 빈(貧)하게 된다.

 

 

더러운 그릇도 그렇다. 깨끗한 그릇은 악한 일에 이익이 있다 해도 손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더러운 그릇은 잘못을 알면서도 손을 잡다가 결국 버림당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그릇에 독이 담긴 줄도 모르고 꿀이 쓰다고 불평까지 한다. 매사에 불평하지 말고 먼저 내 그릇부터 점검하자.

설동욱 목사(서울 예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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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예화 / 노란손수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노란손수건 " Tie A Yellow Libon Round The Old Oak tree"   

          뉴욕... 버스 정류장은 매우 붐볐다.

          생기발랄한 젊은 남녀 세 쌍이 버스에 올라탔다. 플로리다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세 쌍의 남녀들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한참을 떠들고

        웃어대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조용해졌다.

 

 

그들 앞자리에는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무거운 침묵, 수염이 덥수룩한 표정없는 얼굴... 젊은이들은 예사롭지 않은 그 사내에게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일까? 배를 타던 선장?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퇴역 군인?

 


일행 중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사내 곁으로 가서 말을 붙였다.

그에게는 뭔지 모를 우수의 그림자같은 것이 느껴졌다. “포도주 좀 드시겠어요?”  “고맙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다시 무거운 침묵.

여자는 일행 속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애써 잠을 청하려는 듯 등을 뒤로 기댔다.

 


아침이 되었다. 버스는 음식점 앞에 섰다.

어젯밤 말을 붙였던 여자가 그 사내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그는 수줍은 표정을 보이면서 자리를 함께했다. 식사 도중에도 그는 뭔가에 긴장한 듯 담배를

연신 피워 물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고 젊은 여자는 그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얼마 후 사내는 여자의 집요한 관심에 항복했다는 듯,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

를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빙고. 지난 4년 동안 뉴욕의 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이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나는 부끄러운 죄를 짓고 오랜 시간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만약 나를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거나 혼자 사는 것이 고생이 된다고 생각되거든

나를 잊어 달라고 했소. 재혼해도 좋다고 했소. 편지를 안 해도 좋다고 했소. 그 뒤로 아내는

편지를 하지 않았소. 3년 반 동안이나...”


“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썼소. 우리가 살던 마을 어귀에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소. 나는 편지에서, 만일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달라고 말했소. 만일 아내가  재혼을 했거나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손수건을

달아놓지 않으면 나는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 버릴 거요.”


그의 얼굴이 이렇게 굳어져 있는 것은 거의 4년 간이나 소식이 끊긴 아내가 자기를 받아줄 것인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물론이고 그녀의 일행들도 이제 잠시 뒤에

전개될 광경에 대해 궁금해 하며 가슴을 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승객들에게도 전해져

버스 안은 설레임과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빙고는 흥분한 표정을 보이거나 창 밖을 내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굳어진 얼굴에서

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는 이제 곧 눈앞에 나타날 실망의 순간을 대비하여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20마일... 15마일... 10마일...


물을 끼얹은 듯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이 꿈결에서처럼 아스라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고막을 두드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들 창가로 몰려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드디어 버스가 마을을 향해 산모퉁이를 돌았다.

바로 그때.

 

 “와~!!”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버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

20개... 30개... 아니 수백 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다.

 

혹시라도 남편이 손수건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까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빙고 한 사람뿐.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차창 밖의 참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빙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늙은 전과자는 승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버스 앞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 Tie A Yellow Libon  

                                                                     

 

노란 손수건은 용서와 포용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용서해 주고, 고달픈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남편을 기다려준 아내의 지극한

사랑.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1973년 “Tie A Yellow Libon Round The Old Oak Tree"라는 노래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

모두가 기억하는 감동 스토리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I'm coming home, I've done my time...           나는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If you still want me...                                   당신이 아직도 나를 원한다면.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 그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 한 개를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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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

 

  오리건의 엘리자베스 코넬리 여사는 자기의 경험을 이렇게 썼다. "나는 국방성에서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던 조카가 전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슬픔으로 축 늘어졌습니다. 내 마음은 쓰라리고 미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직을 하려고 책상을 정리하는데, 편지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몇 년 전 내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조카가 내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조카는 나를 위로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특히 더하실 겁니다. 그러나 아주머님은 이겨 나가실 것입니다. 저는 항상 웃으며 모든 일을 남자답게 대하라고 하신 아주머님의 말씀을 늘 기억할 것입니다.' 마치 내 옆에서 '아주머니, 저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슬픔을 감추고 웃으면서 헤쳐 나가세요' 하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도 보내고 성인 교육반에도 나갔습니다. 과거의 쓰라림은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마치 내 조카가 바랬던 것처럼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발생한 사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첫걸음이다." 조지 5세는 버킹검 궁전에 있는 그의 도서실에 "저버린 달 때문에, 쏟아진 우유 때문에 울지 않게 가르쳐주소서"라는 좌우명을 걸어놓았다. 

 

▣ 불행의 변수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소설이며 시의 결정들을 가차 없이 서로 비평했다. 그것은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한편 여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혹평은 일절 피하고 좋은 부분만 칭찬했다. 10년 후,그 여학생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유망하던 남학생들 중에서는 단 한명의 뛰어난 작가도 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보통 95%의 좋은 점과 5%의 좋지 않은 점을 갖고 있다. 100%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95 %의 좋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5%의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95%를 보고 사는 사람은 자신감 있게 산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 수도 없다. 상대방의 5%쯤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채워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행복하다.
[국민일보]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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