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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사도 바울 (행9:1-16)

사도 바울

(행9:1-16)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 성경 인물 중 사도 바울에 대해 단편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빛 안에서만 사도 바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는 사도로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는 ‘사울’에서 ‘바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시작으로 해서, 그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에게 맡겨진 모든 사역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는 열세 권의 서신서에서 최소한 백 번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했고, 그의 모든 편지에서 은혜는 인사말이 되었고 축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은혜)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실로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많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갈2:20)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랍비였고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은 율법 박사로 율법에 절대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한 요한복음 1:17 말씀을 체험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죽음 밖에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롬 7장)
(롬7:4-7)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으로, 가장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가운데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에베소서1:3-8을 보겠습니다.
(엡1:3-8)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현재 성도 여러분이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 있다 해도,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것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은, 창세 전에 예정하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유대 율법학자였을 때, 바울은 자신의 풍성한 율법 지식과 종교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문벌과 학벌 등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 못지않게 더 훌륭한 자신의 외적인 조건들, 즉 요즈음 말로 하면 빼어난 ‘스펙’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밝힌 바 있습니다.
(행22:2-3)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빌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믿게 된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과거와 자신의 화려한 ‘스펙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적인 풍성함에 비할 때, 아무데도 쓸데없는 “배설물”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3:4-9입니다.
(빌3:4-9)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과거 자신에게 유익했던 모든 것들을 해로 여길뿐더러, 배설물로 여긴 바울은, 참으로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부유할 때,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데, 그리고 사역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과 경건한 것들로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바 영적 부유함은,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서 나타났습니다. 영적으로 부유한 은혜는 바울뿐만 아니라, 바울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에게도 풍성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풍성한 은혜가 주어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고전1:4-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받았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믿음과 은혜 가운데 견고하게 서 있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은사와 은혜를 받았다 해도, 그 풍성한 은혜와 은사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양하고 많은 은사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고전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러나 그 다양하고 많은 은사들 때문에 교만해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경쟁의식 속에 분렬되어 하나가 되지 못하여, 온전하게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랑으로 하나되어 섬기는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되어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고린도 교회가 예수님을 닮아 사랑으로 하나되지 못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넘치는 사랑으로 함께 하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눈물의 편지’, 고린도 후서를 보냈습니다.
(고후2:4)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변함없는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신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가장 부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가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목적은, 영육간에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 후서8:9을 보겠습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여 영적으로 가장 부요하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풍성하신 은혜로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12:7을 보겠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부요한 자가 되었지만, 견디기 힘든 ‘몸의 가시’, 다시 말해 질병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기 전 사울이었을 때는 없었던 몸의 질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질병을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부른 것은 그만큼 그 질병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살아가는데 이 질병으로 인해 몹시 힘들었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시라고 세 번씩이나 간구했습니다.
(고후12:8)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이 세 번씩이나 간구했다는 것은 그 고통스러운 질고(疾苦)를 벗고 싶어서 매우 진지하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같은 간구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주셨습니다.
(고후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바울에게 주어진 “육체의 가시”는, 바울로 하여금 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인간의 고난이 제거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아픔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늘 주님을 의지하고, 또 주님께서 은혜로 그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더 영광스러운 일이 되기 때문에, “몸의 가시”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베풀어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은혜의 원리가 그에게도 적용되어, 바울은 끊임없이 그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육체적 가시’를 안고 그는 소아시아를 비롯해, 유럽을 향한 광대한 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위험과 고난과 곤궁을 참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며‥‥ 수고하고 잠자지 못하고 배고픔을 견뎌야 했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고후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를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 곧 ‘육체의 가시’가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은, 자신이 너무 교만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을 깨닫고,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었습니다.(고후12:7-9) 그래서 바울은 온갖 박해와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강하게 복음을 전했노라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시를 보좌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7-10). 실로 바울에게 주어진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를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일은, 연약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강했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연약하여 깨지고 가난하고 비천한 존재인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인내 가운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입니다. 빌립보서4:13입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때로 “육체의 가시”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믿음을 강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언제나 우리를 그에 맞는 능력으로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당신의 뜻에 순종한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우리를 결코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바울은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1:12입니다.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육체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고전 1:20;2:6;3:19), ‘인간의 지혜’(고전 2:5) 등을 말합니다. “육체의 지혜로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뜻을 행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 대해 사역할 때, 육체의 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일을 육체의 지혜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교만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1:18-31을 보겠습니다.
(고전1:18-3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교회는 세상적인 원리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원리를 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골1:9)지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일꾼들이 모였을 때, 교회 부서들이 모였을 때, 그리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을 때, 늘 해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탁월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가지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아이 성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파죽지세로 정복했습니다. 다음으로 정복해야 할 성은 아이성이었습니다. 아이 성의 주민은 12,000명에 불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사 2,3천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분명 상대를 얕잡아 보고 이스라엘 군대의 힘만을 믿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수7:2-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 정복 사건(6장) 등 지금까지의 연전연승만을 믿은 지나친 자만심에서 나온 잘못된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3천명 정도의 군사가 정복에 나섰지만 보기좋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이 성 전쟁 실패의 근본적 요인이 아간의 범죄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1절), 이들의 자만심, 교만이 실패의 중요한 요인으로 분명 작용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작고 적은 상대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항상 이기게 된 것은, 크고 작은 모든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상23:10-12입니다.
(삼상23:10-12)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삼하5:19-20)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삼하 8: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대상14:8-11)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대항하러 나갔으나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로 쳐들어온지라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이에 무리가 바알브라심으로 올라갔더니 다윗이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이르되 하나님이 물을 쪼갬 같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대적하는 성마다 멸망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기브온 주민이 아주 먼데서 온 족속인 것처럼 위장해서 화친조약을 요청한 사건이었습니다.
(수9:3-6)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이 사건을 두고 기도하지도 아니하고 그들 요구대로 화친조약을 맺고, 어떠한 경우에도 기브온 족속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수9:14-15)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수9:19-21)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
이 조약을 맺고 사흘이 지나서야 비로소 위장술에 속아 화친조약을 맺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민 33:55)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신20:15-18)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훗날 그야말로 옆구리에 가시같은 존재를 두고 살아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지혜를 확신하고, 하나님보다 앞서 나아가며 백성들을 패배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학문적으로도 탁월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지식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고 교회에게 권고한 것입니다.  그 훈계는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을 모방하러 해서는 안 되고, 각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이 집회 저 세미나로 돌아다니며,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빌려다 쓰는 대신,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해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고 말했을 때에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살아갈 때, 우리의 지침서는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종교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은혜의 말씀이 그 속에 풍성하게 거하는 영적 지도자들은, 세상이나 다른 설교자의 설교로부터 아이디어들을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가족을 돌보는 데 필요한 지혜를 그들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골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하나님의 은혜가 날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헛되이 하지 마십시오.”(고후6:1)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시어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총명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시어, 영적으로 가장 부유한 삶이 되어 이웃 사람들에게 복이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더 풍성하시어, 여러분의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 그것이 고난이든 좋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더욱 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주어진 삶에서 승리하시며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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