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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10월 가정예배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인한 용서)

본문 : 창세기 50장 15~21절

말씀 : 야곱의 장례를 마친 후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와 종으로라도 써달라며 간곡히 부탁하는 것처럼 요셉의 형들도 자신들을 요셉의 종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다가가 위로합니다. 자신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에게 그 용서가 진심임을 눈물로써 확인시켜 줍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속임수로 시작된 이야기가 화해와 위로, 그리고 축복으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죄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용서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들을 애굽 땅으로 인도하신 것일까요?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서 요셉을 만난 후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요셉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은 아들들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자신 또한 아버지를 속였던 사건(자신을 에서라고 속이고 장자권을 얻어낸 것)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인간 사회 속에서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라며 죄악을 쉽게 넘겨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받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둘째,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용서했지만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용서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이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만 자신들을 용서해 주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들을 처형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상호적입니다. 내가 용서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내 용서를 받아들여야 진정한 용서입니다. 요셉도 과거의 일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 용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의 두려움을 알고 난 요셉은 함께 울며 그들을 위로합니다.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상호 용서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주변에 나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위해 기꺼이 울어 줄 마음을 품으십시오.

셋째, 용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내가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철저히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물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고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용서는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통해 축복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기도 :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도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용서로 인해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용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넉넉한 마음을 허락하사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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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비대면예배 기간 10월 가정예배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힘


찬송가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말씀 : 사랑은 단순히 관념이 아니라 힘을 다하는 행동이며 영혼의 느낌이자 마음의 감정입니다. 사랑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첫째, 강도 만난 사람과 율법사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평화의 도성’인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여리고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세상 죄악의 향기, 인간을 유혹하는 향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율법사에게 강도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율법사야, 너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내가 네 영혼의 실상을 말해 준다면 너는 바로 이 강도 만난 사람이야. 네 영혼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는 강도 만난 사람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영생을 얻는 방법을 율법을 통해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자신이 바로 강도 만난 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 사람과 예수님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예수님은 닮은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해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자신도 그런 일을 만날까봐 피해가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불쌍히 여기시고 발걸음을 멈추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길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영혼의 강도를 만나 상처 입은 우리 마음속의 죄악을 피로 씻어주시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씻어진 의로운 마음속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과 같습니다.

셋째,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입니까? 자비를 베푼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치유를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네 이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참된 이웃입니다.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서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났듯, 죄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의롭게 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주님, 세상의 고통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늘 따르게 하시옵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해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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