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옵페르트 남연군 묘소 도굴사건-
옵페르트(E.Gacob Oppert)라고 하는 유대계 독일인이 1854년부터 중국 상하이 체재하고 있었다. 그는 동양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중, 중국과일 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쇄국하고 있음에 이상한 흥미를 느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문호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866년 3월경 대원군의 박해가 한창 진해되고 있을 때 충청 도 가로림만을 다녀간 일이 있었고, 7월 10일에는 강화도 교동도를 찾 아와 무역 거래를 건의하였으나 실패하고 되돌아가 기도 했다. 옵페르트가 두번에 걸쳐 통상에 실패하여 낙심한 중에 있을 무렵,한국 주재 신부였던 페론(Feron)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옵페르트는 그와의대 화를 통하여 제3차 한국 탐방여행을 계획하였다. 그는 기선을 대절하여 대포 수문을 장비하고 페론 신부를 위시하여 8명 의 서양인과 한국 천주교인 최선인과 중국인 승무원 약 1백명을 태우고 1868년 4월 30일 중국 상하이를 출범하였다.그들은 5월 9일 아산만 행담 도에 도착했으며 8년간이나 이 지방 포교에 종사하여 지리를 잘 알고 있 는 페론신부의 지시를 받으면서 덕산이란 곳에 상륙하였다.
옵페르트 일행은 산길과 밭고랑을 더듬어가며 가야동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분묘가 있었다. 옵페르트 일행은 계 획했던 대로 도굴작업에 착수하였다. 급보에 접한 충청감사가 군인을 보 내 습격하였으나 그들은 이미 작업을 포기하고 돌아간 뒤였다. 옵페르트 는 북상하여 영도도에 이르러 개국 통상의 교섭을 또 다시 제의하였다. 실제로 옵페르트는 도굴로 아무것도 소득한 것이 없었으며 또 그러한 행 위는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보복이라고 해명하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말 이 조선정부에게 통할 까닭이 없었다. 옵페르트는 아무 성과없이 상하이 로 되돌아가야 했다. 당시 상하이 거류민 외국인들 사이에는 이 분묘 도굴사건에 대하여 풍 문이 널리 퍼져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화제로 등장하였다. 특히 옵페 르트의 도굴 계획의 목표가 어디에 있었던 지간에, 그가 분묘 안의 부장 품을 입수하여 대원군에 대해 보상금을 강요함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해 적의 행위이었던가, 또는 그 부장품을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한국 천주교 의 신앙 자유 조건으로 한국 천주교의 신앙 자유 또는 통상의 약속을 대 원군으로부터 받아내려고 한 책략이었던 것인가. 하는 등등의 추측으로 자자하게 나돌았다.
이에 대하여 페론 신부가 한 말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대원군은 지 극히 미신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조상의 유물 확보가 섭정 자신과 가족 의 행운을 보장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고로 한국인 교도들이하는 말이 그의 조상의 유물만 점유하면, 대원군은 이 유물을 회구하기 위하 여 모든 일의 타협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Ernst Oppert;A F0 orbidden Land, London,1880) 그렇지만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이 별세 할 당시의 가세는 매우 가난하여 분묘 안에 부장품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도둘의 동기야 어떻게 되었던지 간에 그 행동에 있어서 동양 고래의 조 상의 모시는 전통적 윤리를 파괴한 사실 그것만을 가지고도 지탄받기에 충분하다 하겠거니와, 그것이 국왕의 조부의 무덤이었다고 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범죄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인 신부가 이러한 행 동을 안내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로도 변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은둔의 나라 한국](THE Hermit Nation,Korea)의 저자인 그리피스(W.E,G riffis)는 이를 [국제적 사체 도굴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여튼 이 사건은 서양인의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으며 더욱이 종교의 선포를 사명으 로 하는 선교사가 가담한데 대하여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대원군을 비롯하여 한국의 조야는 이 이일을 계기로 천주교에 대한 분노 와 적대를 더욱 노골화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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