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예배설교 /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제목 :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말씀 : 슥5:1-4
1.두루마리 환상의 개요
오늘 말씀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덟가지 환상 중 여섯 번째로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에 관한 말씀이다. 앞에서 본 다섯가지 환상들은 모두 소망과 은혜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 있을 거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섯 번째 환상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되어 심판과 저주가 선언된다. ⑥두루마리 환상 ⑦에바속에 있는 여인의 환상 ⑧네 병거의 환상이 그것이다. 두루마리 환상은 성경에 기록된대로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내용이고, 에바속에 앉은 여인은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 악인은 결국 결박되어 쫓겨날 것이라는 말씀이다. 네 병거의 이상은 이 땅을 심판하러 온 하나님의 사자들을 상징한다.
두루마리 환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커다란 두루마리가 공중을 날아가는 환상이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양피지로 길이가 무려 20규빗(약9m)이고 넓이가 십규빗(약5m)나 되는 아주 커다란 것이었다. 그 큰 두루마리가 완전히 펼쳐져서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이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의미를 알려주시는데 이 두루마리는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심판의 말씀대로 모든 인류가 심판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놀라운 생명과 은혜와 소망과 축복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우리에게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소망과 축복을 주신다. 그러나 성경에는 동시에 저주와 심판과 형벌에 관한 말씀들도 기록되어 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성경에 기록된대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불신과 악에 묻혀 사는 자들을 심판하신다. 믿음과 의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고, 불신과 죄가운데 사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사랑의 하나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도 이야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만 이야기하며 할아버지가 손자를 귀여워 해주면 버릇이 없어져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 뜯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도 경외심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거역하기 쉽게 되고, 쉽사리 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그러면 순종이 나오고 성결한 삶이 나오고 사명을 감당하게 되고 은혜풍성한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창22:12절을 보라.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순종하는 것으로 경외하는 줄 알았다. 즉 경외하며 순종하고, 순종하면 인정받고 축복받고 은혜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늘 기억하며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주신 역할도 잘 감당하여 구원받고 은혜받고 축복받는 삶을 살아가자.
2.두루마리 환상의 구체적 의미
1)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 받는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과 저주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대로 구원받고 축복받고 은혜를 받는다. 동시에 이 말씀대로 심판을 받는다. 오늘 3절을 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하셨다. 즉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구원과 심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축복과 저주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말씀이다. 어떤 인간적인 인격이나 지식이나 교양이나 선이나 규범이나 도덕이나 행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구원받고 상급받고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 아무리 잘나고 선하고 그럴듯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면 심판받는다.
그러므로 오직 말씀대로 믿고 따르라. 세상에서 무슨 헛소리를 한다해도 거기에 휘둘리지 말라. 착하게 살면 된다느니 아무거나 잘 믿으면 된다느니 그저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된다느니 하는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슴, 생명의 말씀따라 살아가라.
2)하나님의 심판은 그 무엇도 피할 수 없다.
이 두루마리는 하늘을 날아다녔다.(1절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그러면서 3절에 보면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 두루마리가 날아다닌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아무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날아다닌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가두어 둘 수도 없다는 뜻인 것이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는 어느 지역, 어느 시간, 어느 인종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거부한다고 나와 관계없는 것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어느 누구도 성경을 피해 갈 수 없다. 오직 성경대로 심판을 받을 뿐이다. 도망가도 소용없다. 멀리가도 소용없다.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지식으로도 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다. 미국으로 도망가고 소용없고 러시아로 도망가도 소용없다. 모른다고 아니라고 부정해도 소용없다. 대들어도 소용없고 따져도 소용없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멀리한다. 마치 성경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줄로 여기며 살아간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성경을 피해갈 수 없다. 세계만민들이 오직 모든 심판의 근거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선언되는 것이요, 불신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기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선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 말씀을 멀리하지 말고 거부하지는 더더구나 말고 오직 겸손하게 엎드려 바르게 알고 믿고 따름으로 축복을 선언받고 은혜가운데 살아가자.
3)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영역에서 너무나 분명히 이루어진다. 시간적 공간적 윤리적 도덕적 영적 물질적 모든 영역에서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4절을 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인류의 대표적인 두가지 죄악이 거론된다. 첫째는 도적이요, 두 번째는 망령되이 맹세하는 죄이다. 도적이란 윤리적인 죄의 대표적인 죄를 말한다. 도적이란 인간의 내부속에 들어있는 탐심과 시기와 질투에 의하여 노력은 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며 남의 것을 훔쳐오는 것이다. 결국 도적에게는 인간의 모든 죄성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탐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고 아픔과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폭력과 사기와 뇌물과 전쟁과 모든 거짓된 행동이 이런 마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한다는 것은 영적인 죄에 대한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지킬 마음도 없고 그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며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시하며 맹세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께 경솔하게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당연히 자신이 할 수 있는 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약속을 지키고 나아가 말씀대로 살아야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면 어찌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니 주신 명령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윤리적으로 영적으로 성결하게 살라.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모든 윤리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도 버리라. 하나님을 결코 경홀히 여기지 말고 경외하며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라.
4)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준엄하게 이루어진다.
4절을 다시 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모든 윤리적, 영적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심판의 정도는 너무나 준엄하다. 죄가운데 사는 집에 들어가 그 집의 나무와 돌을 사른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얼마나 혹독한지 돌마져 사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자도 없고, 그 심판에서 살아남을 자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누가 그 심판을 피하겠는가? 그 심판의 불앞에 견뎌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무것도 누구도 없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금덩어리도 초호화판 저택도 다 불살라진다. 심지어는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사라지고 지구도 별들도 태양도 다 녹아 내린다.
벧후3:10절을 보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마지막 주님이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실 때는 이 지구를 비롯해서 해와 달과 별과 우주의 모든 것이 불에 녹듯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심판을 불을 피할 자가 과연 누가 있겠는가? 무엇으로 막으며, 어디에 피할 공간이 있겠는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임과 동시에 심판의 말씀, 경고의 말씀이기도하는 것을 명심하자.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가자. 오직 말씀만이 심판의 잣대임을 기억하고 말씀에 순종하자.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되 절대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지 말고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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