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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Year's Eve Service

송구영신예배 설교::설교 행복한 새해를 위하여

말씀 : 고후5:17

제목 : 행복한 새해

1.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큰 병이 들어 나라의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서 처방을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이고 병은 점점 깊어져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소식을 듣고 한 지혜자가 찾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임금님의 병은 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감들의 집을 찾아가 물었으나 누구도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부자집을 찾아다니며 물었지만 이들도 역시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학문이 높은 사람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역시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권세자, 부자, 지식인 등 행복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지만 제일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며 돌아오며 산길을 걷다가 오두막을 발견하고 거기서 묵게 되어 주인 영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는데 뜻밖에도 이 산골 오두막에 사는 노부부가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는 너무 반가워 그러면 당신들의 속옷을 좀 달라고 하자 노부부는 우리는 너무 가난하여 지금까지 속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행복은 결코 권력이나 지식이나 돈이나 잘 생긴 외모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천하를 가지고도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눅17:20,21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천국은 이 땅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을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어 우리에게 임할 것인데 그 동안은 그 천국의 임재를 바라보며 그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천국을 여기서도 앞당겨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천국도 우리 안에서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합당한 마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천국의 은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여러분은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는 천국을 누리기에 합당치 않은 모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신앙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거룩함과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다가온 이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의 삶이 정말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2.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 행복한 마음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죄와 무지속에 있는 옛것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와 무지속에 있는 그래서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이고 패배적이고 추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선과 의와 거룩과 진실 등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모든 것들을 추방하고 우리 주님의 마음인 사랑과 은혜와 진실과 거룩과 의와 선으로 채우면 그 인생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엡4:22-24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마귀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고 생명과 진리의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심령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해봅시다. 과거의 낡고 가치없고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들은 벗어 던져버려 봅시다. 부정적이고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과거의 잔재를 벗어 봅시다. 그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음먹고 주님 앞에 간절히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새 마음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얼마든지 상황과 환경과 처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가능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죽어서 썩은 시체가 살아나는데 무슨 환경, 상황, 나이 그게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새해는 정말 하나님 엎드려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어 과거의 모든 아름답지 못한 잔재들은 다 날려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아 아름답고 향기롭고 큰 기쁨과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삶의 목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되는 존재가 가장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에 어긋난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림 받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텔레비전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화면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냉장고에서 시원한 바람이 안 나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다 고물상으로 들어가 폐기되는 길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무의미가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다. 그냥 잘 먹고 잘살다가 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43:7절을 보세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욕심쟁이라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는 가만히 앉아서 자기 혼자 영광을 누리려고 지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에게도 영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 즉 모든 물질과 시간과 자연과 지헤와 능력과 감정과 영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되겠습니까? 그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를 갖게 되겠습니까? 얼마나 바르게 사용하겠습니까? 얼마나 이웃에게도 기쁨과 유익을 주겠습니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겠으면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반면에 그저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다보면 결국 재물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나아가 향락에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저 더 많이 소유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져서 갈등과 시기와 거짓과 분쟁과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과 물질과 시간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과 권력과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가 자유가 임합니다.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결코 자기 영광, 자기 만족, 자기 명예를 위해서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삶을 영위할 때에 세상의 모든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 자신도 진정한 자유와 평강과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올바른 목적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능합니다. 예수님 만나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내 영혼 속에 있는 모든 죄악된 것들, 무지한 것들, 거룩하지 못하던 것들, 어둡고 칙칙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환경, 조건, 상황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격수양이나 과학이나 지식이나 무슨 물리적인 힘으로도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이름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환경, 상황, 나이 그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소유욕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주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건강의 복과 자녀의 복과 물질의 복과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는 이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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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설교] 부활절 주일예배 설교 

제목 : 부활의 능력

말씀 : 고전15:12~15




1.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음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원수,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 주신 날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둘도 없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죄사함의 은총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새생명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만이 참종교의 조건입니다. 제아무리 고상하고 수준높고 지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없으면 헛일입니다. 영원한 생명, 이게 있어야 진짜고 이게 있어야 생명이 있는 종교이고, 이 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도덕도 흉낼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지도 못한 놀랍고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질서와 이성과 과학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1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여기서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이란 고린도교인 중에 일부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심지어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물론 다 부활을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안 하십니까? 여러분,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성경에 누누이 예언되었던 사실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일입니다. 눅9:2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그리고 물론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28: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대로, 예수님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걸 믿으셔야 합니다. 이걸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게 없으면 제아무리 고상하고 깨끗하고 선하고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어도 빈 쭉정이입니다. 생명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식과 경험과 과학의 법칙을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무지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생명의 주님이심을, 그 안에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이 날을 맞이하여 더욱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안에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부활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모든 죄와 어둠과 사망의 권세와 모든 상황과 환경과 약한 것들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활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사망과 마귀사탄을 비롯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완전히 깨트려 버리고 승리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사망권세보다 큰 권세가 없습니다. 사망은 모는 것을 삼켜버립니다. 사람은 물로 돈도 권세도 과학도 삼켜버립니다. 지식도 능력도 아름다움도 젊음도 사랑도 모조리 삼켜 버립니다. 제아무리 잘나도 똑똑하고 지식과 권세가 있어도 사망권세 앞에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세를 가졌다해도 사망권세가 한번 내리치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힘이 대단합니다. 미국의 무인우주선이 시속 약2만km로 약4개월 동안 비행하여 화성에 착륙하여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니 참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복제인간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니까 인간이 참 대단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의 능력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아무리 수억 수조 Km를 날아가는 우주를 탐사해도 생명과 죽음의 문제는 속수무책입니다. 제 아무리 인간이 기술이 좋고 과학이 발달해도 쌀 한 톨 만들어 낼 수 없고, 하찮은 벌레 한 마리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생명체를 가지고 어떻게 조금 변형시키고 장난을 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명을 창조할 수도 없고,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도 죽었고, 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도 죽음 앞에서는 쪽도 못썼습니다. 그밖에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나 그 어떤 유명한 과학자나 정치가나 사상가나 영웅호걸이나 할 것 없이 죽음 앞에서는 그냥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망권세 억눌려 있으실 수 없었던 주님은 사망 권세,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사망의 권세, 마귀사탄의 권세를 이기시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만천하에 명백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생전에도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소녀야 내가 네가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시자 죽은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며 잔잔하라고 말씀하시자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은 그 분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어둠의 권세, 악의 권세를 이기는 유일한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 안에 있을 때만이 우리 모두가 죽음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승리의 보장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인류 최대의 적인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무덤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 우리에게 어떤 승리인들 못 가져다주겠습니까? 

여러분, 눅11:21,22절을 보십시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앞의 강한 자는 사탄입니다. 뒤의 더 강한 자는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인류의 범죄이후에 마치 사탄이 우리의 주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 육신과 물질과 시간과 능력을 마치 제 것처럼 여기며 제멋대로 사용하도록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능력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고 사탄이 제멋대로 사용하던 것들을 빼앗아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모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우리 모든 것들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삶으로 원위치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보다 더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와 인도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어떤 시험과 유혹이 오든지 고난이나 핍박이나 가난이나 어려움이나 그 밖에 그 어떤 어둠의 권세가 대들든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롬8: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그런 것들이 우리를 절망시키고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지킴으로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가장 강한 자를 이기신 예수님, 그래서 완전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낙심하고 절망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를 물리치신 예수님,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심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힘든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물질이 부족해도, 혹시 육신이 좀 건강치 못해도 혹시 자녀가 뭔가 좀 문제에 직면해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원망 불평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는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께 대한 견고한 믿음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활의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고, 그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얼마나 은혜와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예수님 안에 모든 승리가 있는데, 예수님안에 생명의 풍성한 은총이 있는데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평 불만 원망 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분명히 승리가 있는데, 예수님 안에 분명히 생명의 은총이 있는데 우리가 소망과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자 아닙니까?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망과 위로과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영광의 나라에 대한 보장이요,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도 얼마든지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능력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소망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866년 글래스고우 대학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적인 활동을 한 데이빗 리빙스턴 목사님께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학위를 받기 위하여 강단으로 나오는 리빙스턴 선교사는 갖은 고초로 겉모양은 수척 할대로 수척해져 있었고, 사자에게 물린 왼팔은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단에 선 그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감사와 기쁨으로 힘 있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아프리카에서 지낸 세월을 희생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그저 조금이나마 갚으려 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미력하나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저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걸 어찌 희생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맹수와 질병과 혹독한 기후와 야만인 가운데서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던 주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그저 감사할 것 뿐이었습니다. 힘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나는 다시 아프리카로 갈 것입니다. 거기가 내 삶의 자리이고 거기에 내 인생의 보람과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헌신하다가 60세의 나이에 아프리카의 한 오지의 자신의 방에서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분은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쁨과 보람과 위로와 소망가운데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백한 대로 부활의 주님을 믿었고 그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로 그리고 주님앞에 설 날에 대한 소망으로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 가운데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에게는 분명 이런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16:2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들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과 염려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다시 볼 것이다. 즉 부활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기쁨을 찾을 것이요, 그 기쁨은 그 아무도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제자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그런 승리를 주셨습니다. 죄로부터 건져주시고 사망의 권세, 사탄의 권세, 모든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심으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모든 상황 모든 환경 모든 여건 속에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며 감사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새롭게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영원한 승리를 주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셔 들이고 부활의 주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능력과 소망과 위로 가우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런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어둠과 모든 약한 것들과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그 밖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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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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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전도폭발 예화 모음


♣ 선행 - 친구의 선물 

영생은 순수한 선물처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내고 공로를 쌓고 종교적인 행위로 어떤 자격을 얻는다 해도 그것으로 천국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중한 친구가 귀한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선생님)을 깜짝 놀래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즉시 지갑을 꺼내들고 선물 값 얼마를 갚기 위해 돈을 만지작거린다면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이겠습니까! 선물은 값없이 거저 받아야만 선물입니다. 한푼이라도 지불을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 천국의 영생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죄의 정의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지 강도나 살인이나 간음 등을 염두에 둘 때가 많아요.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성미를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등,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도 죄예요. 또 기도를 하지 않거나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지 않는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역시 죄예요. 죄는 행동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욕설, 정욕, 교만, 미움 등 생각과 말로도 짓게 돼요.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 하루 세번의 죄 예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에 열 번이나 다섯 번 혹은 단지 세 번의 죄만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니, 그런 사람은 걸어다니는 천사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이상을 불친절한 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본분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처럼 선하다 할지라도 일년이면 그가 줄잡아 1천번의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70평생을 산다면 그가 하나님의 법을 7만번이나 어긴 범죄 기록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형사법원에서 7만번의 범죄기록을 가진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중형을 받겠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 썩은 계란이 들어간 요리 예화 

우리가 싱싱한 계란 다섯개에 썩은 계란 하나를 섞어서 요리하여 손님에게 대접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들이 많이 들어 있을지 모르나 실상은 부패한 생각과 행위로 가득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리라고 기대할 수는 더욱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완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언제든지 그에게 완전히 순종해야 된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모두 다 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선생님)이나 저나 또 어느 누구라도 왜 행위를 가지고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시겠지요? 


♣ 은행강도 예화 

어떤 무장강도가 은행에서 5백 만원을 털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비밀 카메라가 그 현장을 포착했고 은행 직원들과 그 밖의 목격자들이 피의자를 확인했습니다. 판사 앞에 선 피의자는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가 죄를 졌습니다." 하고 자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가 "판사님, 제가 강도 짓을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돈도 그대로 돌려드렸고 또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저를 이대로 풀어주신다면 다시는 은행을 털지 않겠습니다."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판사가 만일 그를 풀어준다면 그가 과연 공정한 판사이겠습니까? 
판사가 지켜야 할 공정한 표준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강도를 풀어준다면 세상에 온전히 남을 은행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판사도 정의 때문에 범법자를 벌해야만 한다면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죄를 벌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성경이 형벌 받을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죄를 기록한 책 예화 

제 오른손에 있는 이 책이 제 삶을 아주 상세히 기록해 둔 책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는 제가 지은 모든 죄와, 제가 한 모든 말과, 제 마음에 스쳐간 모든 생각과, 제가 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책을 들어 올린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제 죄가 (책을 왼손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왼손 손등을 가리킨다) 사랑하지만 제 죄는 (왼손 손바닥 위의 책을 가리킨다) 미워하셔서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오른손을 위로 들었다가 책을 든 왼손의 위치와 나란히 내려 놓는다.)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대목에서 단번에 분명한 동작으로 왼손의 책을 오른손에 옮겨 놓는다.) 라고 했습니다.(사 53 : 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 모든 죄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벧전 2 : 24)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어 계시다가 (책을 무릎에 내려 놓는다)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선생님)과 저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의 영생을 (선생님)과 저에게 선물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 테텔레스타이 예화 

그런데 저는 부모된 입장에서 깜짝 놀랄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맞고 고난을 당하셨으며 하나님이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진노 곧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최후의 죄값이 치러졌을 때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는 이 말이 흥미 있는 낱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테텔레스타이라는 상업 용어로서 "완불되었다, 빚이 다 갚아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 천국문을 여는 열쇠 예화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선생님)도 이와 같은 열쇠꾸러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열쇠들은 다소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열쇠들을 가지고 우리 집 현관문에 가서 다 시험을 해보면 제 열쇠를 찾아야만 문을 열 수가 있습니다. 다른 열쇠로도 문이 열릴것이라고 아무리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바른 열쇠라야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여는 바른 열쇠는 구원 얻는 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줍니다. 그 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이 천국문을 열어 주리라고 아무리 진실하게 믿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얻는 참 믿음은 무엇일까요? 


♣ 역사상의 어떤 사실들에 대한 지식적 동의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믿는 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들은 그가 실제로 이 땅 위에 살았던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상의 실제 인물이었으나 지금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 귀신예화 

성경은 말하기를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 얻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 8:29)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 일시적/ 현세적 믿음 

사람들이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재정적인 문제로 주님을 의지할 때 그것은 재정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족을 돌아보아 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은 가족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주님을 의지할 때는 그것을 결정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할 때 (선생님)은 여행믿음을 갖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 일시적인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들이 일단 해결되거나 지나가고 나면 (선생님)은 더 이상 그 일로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다 이생의 것들, 곧 잠시 있다 지나갈 이 세상의 것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시적인 문제들을 위해서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참 믿음은 (선생님)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 경건생활의 동기 예화 

프린스턴 대학교의 이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젊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나머지의 모든 생애는 단순히 그 날에 덧붙여진 하나의 덤으로서 ' 주님 그 때 내게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 동기는 영생에 대한 감사에 있어요. 
*고후 5 :14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그리스도의 사역-인간이 처한 궁지의 해결책 

우리에게는 인간이 처한 궁지를 해결할 공식이 있다. 인간의 죄에 하나님의 공의를 더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라는 답밖에는 안나온다. 우리는 마땅히 그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에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갚으셔야 했던 것이다. 


♣ 거지의 손 예화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 한 거지의 손과도 같아요. 이 거지는(저도) 수년 전에 깨끗하지 못하고 무가치한 손을 내밀어 영생의 선물을 받았어요. 
그 때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었어요. 지금도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영생을 갖고 있어요! 은혜로 얻었어요! 
(가능하면 그 집안의 장식품 중 가까이 있는 것 하나를 예화 중의 선물로 사용한다.
 미리 그것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가 믿음은 어떤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내어민...하는 대목에서 왼손을 내어민 다음 예화를 마칠 때 내밀고 있던 왼손으로 그 선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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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절기] 사순절의 유래 

사순절(四旬節, The Lent)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을 갖는 명칭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한다. 이는 부활 주일을 기점으로 역산하여 도중에 들어있는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 묵상하며 경건히 보내고자 하는 절기이다.

  한편 40이란 수는 예수께서 40일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심, 40일간 시내산에서의 모세의 금식,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의 부활에서 승천까지의 40일 등과 같이 성경에 여러 번 고난과 갱신의 상징적 기간으로 등장한다.

  이에 고난 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의 구속을 위해 수난을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의의를 살펴보며 자신의 신앙을 재 각성하고자 비교적 긴 40일간의 절제 기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이다.
 
1. 시기                  
 
  사순절(四旬節)은 대속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겪으신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부활절 전 40일간의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을 말한다. 이는 부활 주일부터 거슬러 올라 가기 시작하여 주일을 뺀 40일 간의 기간이며, 특별히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날은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이라 불린다.

  사순절 기간이 40일로 처음 결정된 것은 A.D,325년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ea)에서였다. 따라서 교회 역사 가운데는 꼭 40일이 아닌 기간 동안 사순절의 의미를 갖는 절기가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동로마 교회에서는 부활절 준비 기간으로 7주를 지키되 토요일은 제외하고 일요일도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성 주일'만을 포함해 36일을 이 기간으로 지켰었다. 서로마 교회도 6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한 36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이러한 관습은 니케아 회의 후에도 게속되어 얼마 동안은 오늘날과 같은 40일간의 절기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후 7세기 무렵 서로마 교회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하면서부터 오늘날과 동일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또한 이 기간 대표적인 행사로 지켜졌던 자신의 죄와 그리스도의 대속을 생각하며 금식하는 것도 사순절 기간 내내 행해진 것이 아니라 2,3일 동안만 행해 봅駭?

  한편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날은 재의 수요일, 성회 수요일, 속죄일 등으로 불리워진다.
 
2. 유래                  
 
  사순절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을 행했는데, 초대 교회 성도들도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님께서 제공하신 성찬식에 잎서 금식을 행했던 것이다. 또한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는 새로 영접되는 성도의 성례식이 있게 되는데, 세례 예비자들은 이때 세례와 입교(入敎)를 받기 위하여 두 주간의 준비기를 두고 금식과 기도로 신령한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부활절에 있을 세례식을 준비하는 세례 예비자들은 물론 이미 성도로 영접된 사람들 모두 금식과 기도 생활에 힘썼다.

  사순절 행사로서의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으며 ,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해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3일 정도의 '사육제'(canival)가 거행되었었다. 이 사육제는 원래 '육이여'(carni), '안녕'(vale)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교적인 영향을 받은 이 축제의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사순절과는 대조적으로 술과 고기를 먹었으며, 가장 행렬 등의 인간의 쾌락 본능을 자극하는 행사들이 행해졌다.  그러다가 1517년 종교 개혁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직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교회의 의식 철차들을 폐지했는데, 이때 사순절에 관계된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내지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는 등,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다.
   
3. 풍습                  
 
(1) 종려나무의 재로 이마에 십자가 그리기

  종려나무를 태운 재 혹은 숯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행해지던 풍습이다. 이때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 만든 것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으로 이끌었던 인간의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다. 이는 또한 아름다운 풀과 꽃이 잠깐 후면 마르고 시들 듯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고, 한 줌의 흙에서 왔던 우리도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금식 기도

  금식은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금식의 기간과 그 엄격성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속 사역을 기리고 하늘 나라의 백성됨을 감사하며 그 백성된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돌이키게 하는 금식 기도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졌었다. 오늘날 행해지는 금식 기도는 엄격했던 초기의 형태에서 많이 변형되어 절식(節食) 기도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2. 유래참조).

(3) 구제와 선행 베풀기

  사순절에는 범죄한 인류를 위해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다. 특히 사순절에 행해지는 금식 기도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의 동참, 불의한 자신에 대한 회개 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과 가난을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실천에 있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랑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이다.
 
4. 주요 행사                  
 
(1) 금식 기도

  사순절은 자기 근신과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의 마음 자세를 살피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재정비하는 영적 훈련의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갖은 핍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피흘리심으로 인해 그들이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진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에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난을 기억하며 금식 기도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고 무리한 금식은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도 있으므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절식 형태의 금식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금식 기간에 식사와 군것질 등을 절제해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하면 교육적인 면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명이 사순절 기간 동안 기도의 순서를 정해 놓고 돌아가면서 금식 기도하는 기도회 형식의 모임을 가지고, 서로의 경험과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구성원들간의 유대를 강화시켜 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2) 사순절 주일 예배

  사순절 절기 안에는 6번의 주일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각 주일에는 단계와 특색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순절의 첫째 주일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사단에게 시험받으셨음을 생각하며 지낸다(마 4:1-10).

  사순절 둘째 주일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4:11).

  사순절의 셋째 주일은 빛과 어둠의 대립 즉, 빛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인 사단과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말씀(요 1:1-18)을 생갹하며 예배를 드린다.

  사순절의 넷째 주일은 사순절 중간에 끼어 있어 '사순절중절' 또는 '휴양 주일'(休養週日)이라고 불린다. 이 주일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위한 고난과 사단과의 싸움 등을 다루는 사순절의 다른 주일과는 달리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것으로 말씀을 삼는다(마 14:13-21).

  사순절 다섯째 주일은 고난 주일이라고도 하는데, 이 주일의 명칭은 주님이 자신에게 임할 고난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때는 가룟 유다에게 팔리어 고난받으셨던 주님에 대해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20:18,19).

  사순절 여섯째 주일, 즉 종려 주일(Palm Sunday)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군중들에 관계된 말씀을 본다(마 21:1-11). 종려 주일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종려 주일'과 '고난주간'을 참조하라.

(3) 사순절 달력 작성

  그리스도의 수난 과정을 담은 사순절 달력은 가정 예배시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어진다. 사순절 달력은 40일간의 사순절 기간과 그 기간에 포함된 6번의 주일을 포함하여 만드는데, 달력 안에  각 날에 관련된 성경 구절과 찬송, 그리고 묵상 주제 등을 기입한다. 사순절 달력은 교회에서 주관하여 만들 수도 있고 가정에 어린 자녀가 있을 경우 부모가 자녀와 함께 만들 수도 있다. 어린 자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순절 달력의 그날 그날의 주제를 그림으로 그려 넣기도 한다.


(4) 무언극

  무언극(無言劇)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얼굴 표정만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의 한 형태이다. 사순절은 요란한 행사보다 조용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간이므로 사순절 관련 말씀을 무언극 형식으로 꾸며 이를 통한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언극은 행동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 주제가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소재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무언극에 출현하는 배우도 명확하고 큰 몸동작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과 주제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효과음과 음악을 사용하면 극의 깊이와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순절 무언극의 소재로는 사단에게 유혹받으시는 예수님(마 4:1-11), 백성들에게 배척당하시는 예수님(눅 9:51-56) 등의 이야기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주일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마 28:1-10) 소재로도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부활절 예배 자료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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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알아야할 모범적인 대표기도
   
열왕기상 8:20-60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왕상8:20),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고"(왕상8:21)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솔로몬의 대표기도(공중기도)를 볼 수 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있고(왕상8:22-23), 이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에 대한 확신" 곧 "말씀의 확신"이 있고(8:24-26),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하는 "기도와 간구"가 있고(8:27-29), "회개와 용서와 사죄의 은총과 사유하심"에 대한 간구가 있으며(8:30-40), "중보기도"(8:41-53)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축복기도"(8:55-60)가 있다. 
  
솔로몬의 대표기도의 내용을 보면:
  
1) 하나님에 대한 찬양,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3) 회개와 사죄에 대한 은총, 
4) 기도와 간구 
5) 중보기도 그리고 
6) 축복기도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기도의 내용은: 
  
1) 하나님에 대한 찬양(Adoration), 
2) 회개(Confession), 
3) 감사(Thanksgiving), 
4) 간구(Supplication), 
5) 중보기도(Intercession)로 되어있는데 
  
솔로몬의 기도는 구체적으로 감사의 구절은 별도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기도의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뜻을 담고 있다(8:27, 53, 61). 이와 같이 볼 때에 솔로몬도 일반적인 기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공중기도의 다른 예를 살펴보면,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드린 공중 기도가 있다.
  
"12사도 중 결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1:24-25), "안수집사를 세우기 위하여 드린 기도"(행6:6) 등 여러 형태의 대표기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주의하여야 할 몇 가지사항을 살펴보면: 
  
① 대표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 대표기도 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회개문제, 자신의 가정문제, 자신의 감정에 의한 문제 등 기도자의 개인적인 문제를 공중기도에 언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도할 자격"이 없다든지, "기도를 잘 할 줄 모른다"든지 그러한 말도 기도의 내용에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③ 만일 대표기도를 할 때에 기도자의 개인의 삶에, 또는 개인의 감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그 문제가 온전히 해결 될 때 가지 대표기도를 삼가 하는 것이 좋다. 
  
④ 대표기도 자는 먼저 깊은 회개기도와 성령 충만함(엡 5:18)을 확인하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⑤ 대표기도 자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회중의 죄와 감사와 간구와 도고를 도맡아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⑥ 대표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⑦ 또한 대표기도는 설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⑧ 대표기도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 그 내용을 다르게 기도하여야 하므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기도해야 한다. 주일대표기도, 헌금기도, 저녁 찬양예배, 수요성경공부, 금요철야기도, 식사기도 등 
  
⑨ 가장 중요한 것은 공중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므로 너무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⑩ 대표기도를 드릴 때에 기도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나와서 기도를 읽는 예를 볼 수 있는데, 
  
(가) 가장 좋은 대표기도는 "작성된 기도문"을 읽는 것보다 직접 아뢰는 기도가 더욱 좋다. 
  
(나) 그러나 직접 아뢰는 기도가 힘들 때에는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는 것도 무방한 줄 안다. 
  
(다) 다만 대표 기도를 "작성된 기도문"을 읽을 때에는 아래의 사항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 깊은 회개와 감사와 기도가 있은 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문을 작성할 것 
  
- "작성된 기도문"을 읽고 또 읽어서, 거의 암송하여, 직접 아뢰는 기도같이 기도할 것 
  
-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러나 담대한 마음으로 겸손히 기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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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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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자의 기도 
 
사랑하시는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지금부터 천국 갈 때까지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치료함을 받아

새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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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랑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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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인사말과 문자 

크리스마스는 항상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탄생을 그리면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떡과 맛난 과일 다과회와 푸짐한 선물로 친교로 나누 주고 이웃에도 

나누 주는 기쁜 날로 오래 오래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크리스마스처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각자 마음이 들뜨는 날은 두고

두고 없어 크리스마스 날을 기해 여행도 가고 즐거운 추억을 가지기 위해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나이 든 사람은 그들대로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보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빛이 되시고 구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능력이십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하시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B,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피와 사망의 권세로 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낮아지심과 섬김 희생의 삶은

온 인류의 꿈과 비전 희망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성탄을 맞이하여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C,

성탄의 선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성탄절을 맞이하시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고, 매일매일 건강하세요.

†─ 축 ── ☆

아기예수 

탄생하신 날 
 
F, 기쁜 성탄과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est Wishes for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1,Merry Christmas!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2,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늘 행복한 가정이루세요.

3,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늘 행복한 가정이루세요.

4,사랑, 행복, 기쁨이 두 손을 모아 기원합니다.

5,크리스마스소원을 빌어봐 이루어 질거야

6,온통 새하얀 세상 너와 함께할 크리스마스. 화이트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어 

7,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모두모두 행복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8,메리크리스마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9,메리 크리스마스 사랑행복 만땅

10,크리스마스선물 메리크리스마스 


11,사랑, 행복, 기쁨이 두 손을 모아 기원합니다.

12,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늘 행복한 가정이루세요.

13,크리스마스의 축복을 너에게루

14,이 세상 행복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사람 너랑 길고 긴이겨울 따뜻하고 이쁘게 보내고 싶당알럽 유

15,Merry Christmas!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16,크리스마스가 되면 세상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예쁘게 반짝이는 화려한 트리와 흥겹게 흘러나오는 캐롤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선물도 많이 받으시고, 즐거움도 가득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 희망 가득한 새해 기쁨으로 맞으세요!!

Happy Christmas!

Merry X-mas~! 

 

17,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고, 

남은 시간들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8,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19,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행복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20,메리 크리스마스 당신의 사랑과 행복, 그리고 기쁨을 두 손 가득히 모아 기원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늘 행복한 가정 이루세요. 

 
21,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고, 남은 시간들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2,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행복하게 보내시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뜻한 바 모든일 성취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3,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은 축복과 더 많은 사랑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모두모두 행복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24,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는 더 많은 축복과 더 많은 사랑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모두모두 행복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25,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고,

남은 시간들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6,기쁜 성탄과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est Wishes for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27,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좋은 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지내온 한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시는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28,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즐거운 계획들 많이 만드셨는지요

사랑과 기쁨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더불어 남은 12월 잘 마무리 잘하세요!

다가오는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9,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행복하게 보내시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뜻한바 모든 일 성취하시길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0,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

좋은 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지내온 한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시는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31,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사랑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고, 매일매일 건강하세요.

†─ 축 ── ☆

아기예수 

 탄생하신 날

32,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33,성탄절을 맞이하여 귀 가정에 항상 즐거움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기원합니다. 

34,올해에도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35,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여 늘 가정에 웃음꽃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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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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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믿음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

사람은 동물과 여러 가지 다른 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은 일하고 기도하며 웃는 존재입니다. 웃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웃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비웃음만이 가득해졌습니다.

웃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유대인에겐 귀가 세 개라고 합니다. 두 개는 얼굴에 달린 진짜 귀이고, 나머지 한 개는 ‘웃음’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웃음을 귀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스갯소리를 들어야만 웃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웃음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웃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인생의 기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웃었습니다. 물론 그 웃음은 ‘비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의 확신은 내 인생의 ‘웃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십니다.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해야 인생이 기쁘고 웃음이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웃음은 귀담아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며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십니다. 부디 주의 말씀으로 웃음 가득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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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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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보내는 방법

추석 벌초를 어떻게 해야하나?

추석 벌초 문제를 놓고 매년 추석 때마다 부모님과 형제들사이에 적지않게 마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1, 장손인 사람이 부모님과 위조상
님의 기제사도 다 맡아서 모셔야 합니다.

2, 장손인 사람이 벌초도 다 맡아서
해야합니다.
3, 벌초도 장손인 사람이 직접해야
효도이고 다른 사람에게 대여하면
불효라하여 부모님과 자식과 형제
간에 마찰로 인해 형제들사이에
적지않게 마찰이 생겨 형제간에
의리가 불화로번지는 가정이 의
외로 많아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4, 장손이 혼자 종가집 일을 다하기는
부담이 되고하니 벌초는 형제간에 매년
돌아가면서 차수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니 차남들이 (둘째 셋째 넷째)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의리없는 가족들
도 보았습니다.

예로는:
장남인 장손인 앞으로 종가의 재산을
별도로 물려받은 경우는 차남들이
하는 행동을 더이상 말할수 없다는 것을 첨부한다.

추석 명절 문제해결

벌초 문제로 형제들간에 다투지 말고, 형제간에 대여 인건비 금액 총액수를
분할하여 돈으로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이 최선이 아니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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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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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고발 영화 ‘사랑의 선물’, 매진 기록 기독교 뉴스

김규민 감독 “독재정권 붕괴시키는 선물되길 기도”

▲영화 ‘사랑의 선물’ 포스터.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영화 ‘사랑의 선물’이 개봉 첫날(15일) 여러 상영관에서 매진을 기록했다.

영화 ‘사랑의 선물’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990년대 북한 식량난 당시 보고 들은 실화(實話)를 배경으로 한다. 해외에서 먼저 알려진 이 영화는 영국 런던 독립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퀸즈 세계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 영예의 영화제에서 해방(Liberatio)/사회정의(Social Justice)/항의(protest) 우수상을 수상했고, 세계 20여 유수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았다.

이 같은 성과에도 영화 ‘사랑의 선물’은 국내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초 CGV압구정 아트하우스 한 곳에서만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개봉관 및 상영관이 늘었다. 특히 개봉 첫날, 한마음프로덕션에 따르면 명보아트홀과 CGV 아트하우스 모두 첫날 전석 매진됐다. 이외에도 부산 CGV 서면, 울산현대예술관, 안동중앙시네마, GV명동역 CGV용산 CGV동수원 CGV여의도 CGV부천소풍 CGV신촌아트레몬 등에서 상영이 이어졌다.

영화 개봉 이후인 16일, 김규민 감독은 “어제는 참 감사한 날 이었다. 2013년 시나리오 작업으로 시작된 영화 사랑의 선물이 누구도 믿지 않았던 크라우드 펀딩 성공과 함께 많은 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영화로 제작되었고 수많은 해외 영화제에서 선전하였으며 시작한지 7년 만에 드디어 극장에서 개봉된 날이었다”며 “참 만감이 교차하고 자꾸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어 “서서라도 보겠다고 기다리는 관객들과, 혹시 예매했던 분이 취소할 수도 있다는 직원들의 말에 영화 시작 전까지 기다리다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 죄송했고 감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영화 ‘사랑의 선물’이 김정은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그 추종자들을 괴멸시키는 멸공통일 대한민국의 선물이 되기를, 그 길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며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는 시편 성경구절을 덧붙였다.

한편 김규민 감독은 26살이던 2000년 탈북한 탈북민으로 ‘탈북민 영화감독 1호’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6년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북한 인권을 주제로 ‘겨울나비’(2011), ‘1925’(2013), ‘11월 9일’(2014), ‘퍼스트 스텝’(2016)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원본링크]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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