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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주일예배대표 대표기도문(7월26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죄 많은 우리들을 특별히 선택하사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오늘도 만세 전에 만들어주신 거룩한 주일을 맞아, 저희들을 당신의 품속으로 불러주시어 예배드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시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게 하시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깨끗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들의 소원을 간구하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바치는 예배가 되어 주님께서 기쁘게 열납하시는 예배가 되어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고 은혜 받은 예배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지난 주간에도 저희는 주님의 고귀한 십자가의 사랑을 망각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 왔으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다고는 하면서도 여전히 저희 스스로가 주인 행세를 하며 내 고집 내 뜻대로 살아온 완악한 죄인들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저희로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셨지만, 저희는 저희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며 이를 또한 당연시하여 왔습니다.

주여!

이러한 저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에게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살 수 있도록 깊은 믿음을 내려 주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금년에도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을 주셔서 깨끗한 자연 속에서 맘껏 살아가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희들의 신앙도 항상 저 푸른 초목처럼 주님을 향해 날로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믿음이 일신우일신하여 저희가 몸담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사회를 항상 새롭게 하는 하늘전사가 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고해 많은 추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히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 자녀답게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아름답게 풍기며 주님의 증인이 되어 주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기 바랍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를 주님께서 세워주시고 항상 지켜 주시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더욱 주께서 축복하여 주셔서 우리 OO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펴는데 한 모퉁이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각 기관도 더욱 사랑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기관들로 키워 주시기 원하옵니다.

항상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는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시대가 주의 손에 달려 있사오니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강대한 나라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굳세게 하시는 분이오니, 늘 외부로나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온 수난의 역사를 지닌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가 공의로운 나라가 되며, 모든 백성들이 존귀함을 받고 사람의 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귀한 나라가 될 수 있으며, 주님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나라가 될 수 있게 인도하옵소서. 특히 우리나라는 허리가 잘려진 분단국으로 동쪽끼리 서로 적대시하고 총을 겨눈 채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오니 이 민족의 아픔을 주여 외면치 마시고 돌봐 주셔서 어서 빨리 평화통일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하나 되면 온 민족이 하나가 될 줄 믿사오니.

주님! 인간의 이념이나 주의 주장으로 통일을 이루려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통일을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은혜 주시기를 즐겨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도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각 가정마다 항상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매사를 축복하여 주시며, 자녀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강인하고 튼튼한 믿음을 주시고 그들이 험난한 이 세상 살아갈 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 건강의 복을 내려 주셔서 활기차게 인생을 설계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는 어린이들이 많사오니 그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훌륭한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걱정하고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연약한 믿음 때문이오니 항상 튼튼한 믿음과 신앙심을 주시어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들이 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구하옵니다.

이 시간 단위에 세우신 주의 사자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시사 말씀마다 능력을 주시어 저희들이 은혜 받는 귀한 시간이 되고 신령한 하늘나라의 복을 받아들이는 값진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이 예배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옵소서.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길 바라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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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셋째주일예배대표기도문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형통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 거룩한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오늘도 만세전에 계획하신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을 허락해 주셔서 원근 각처에서 흩어져 생활하던 저희들이 주의 전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셨사오니, 이 시간에도 주님 함께 하여 주시사, 신령과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거룩한 산 제사로 영적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빌고 원합니다. 

지난 주간도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저희들의 잘못된 모든 죄들을 용서하여 주시어서 이 시간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오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습과 삶이 주님의 형상과 주님의 삶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교만하거나 오만하여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삶이 아니라 낮아지고 겸손하여서 주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곳에 오셔서 저희들의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고 무너진 것들을 튼튼히 보수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을 붙들어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항상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나라를 기억하고 돌보아 주시옵소서. 이제 정부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한국경제가 활성화되어 경제가 부흥되고 산업이 발달되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게 해 주시고, 지역간, 계층간 분열된 국론이 하나로 통합되게 하시고,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리해 온 국민이 주님께 영광 드리는 나라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곳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지금까지, 전도와 선교에 힘쓰며, 말씀과 평안과 행복이 있는 교회로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의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여 주옵소서. 각 가정마다 항상 하나님이 계셔서 매사를 축복하여 주시오며, 그 가족들에게 건강의 복도 주시며, 특히 자녀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매사에 승리하도록 돌보아 주시옵소서. 또 몸이 연약한 성도들도 있아오니 안수하여 주셔서 어서 질병에서 노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또 영국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있는 ooo목사를 사랑하셔서 말씀의 진리를 깨달아,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오며 그의 앞길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또 일본에서 선교사업을 하는 ooo 목사를 기억하시고 그의 선교사업이 날로 번창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기쁨으로 봉사하는 형제자매들과 각 기관과 기관장들에게 복을 주시고 영육간 형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여러 기관들을 부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목사님을 통하여 증거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날선 검이 되어 우리의 심령골수를 쪼개어 병든 영혼과 육체를 치료하게 하시고 성도들의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받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된 주님의 날 교회를 섬기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케 하시고 교회학교 교사들과 어린이들에게도 지혜의 복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숫자는 적지마는 성가대원들이 정성껏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기를 원하오니 대원들의 성대를 지켜 주시사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드려서, 부르는 대원들이나 성도들이 한가지로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며,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길 빌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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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둘째 주일 예배 대표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의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저희가 이렇게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땅에서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분단된 나라와 겨레를 사랑 하시사 정치적 안정, 경제적 부흥, 군사적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6. 25동란으로 저희가 큰 환난을 당했으나, 지금까지 남겨 놓으시고 나라를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역군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모두가 6. 25를 통해 얻은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고 남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게 하시고, 이웃 간에 서로 사랑하고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여 세계를 향하여 선진 조국을 빛내고, 정의와 자유가 보장되는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데 책임 있는 시민이 되게 하시옵소서.

능력의 주님!

오랜 공산 정권의 압제 하에 영육 간에 기갈에 처한 북한 동포들을 기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잘못된 정권과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속히 멸하여 주시옵고, 종교의 자유도 다시 회복됨으로 우렁찬 기도 소리와 찬송이 북녘 땅 곳곳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은혜의 주님!

남한의 모든 교회도 주님 앞에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더욱 힘써 부르짖게 하시고, 이 민족 전체가 복음화 되기까지 구령의 열정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교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단위에 세우신 목사님의 말씀에 권능을 더하여 주시고, 권세를 더하여 주시어 듣는 자마다 변화되며 새롭게 되는 역사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하오니 성령께서 저희들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이끌어주실 것을 믿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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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부활주일 대표기도문 (2020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올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 주님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이 시간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자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을 찬양하오며 부활의 첫 열매로 우리에게 보이시고 우리를 부활로 이끄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배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부활주일 예배로 모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때에 온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해 주셔서 크게 쓰임 받게 하시고 부흥되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우리교회가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도 아니하는 불신자 전도를 하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전도를 통해서 성도들이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온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이 믿음으로 든든하게 서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통해서 이 지역이 복음화 되게 하시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이 복을 받고 사단의 진들이 무너지고
복음의 문이 열리게 하시어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온가족과 성도들이 쓰임 받게 하시고 영적 고지를 점령하고 신수성가의 복을 받는 우리교회와 성도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목사님을 붙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피곤치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신원성대를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목사님 단위에 서셔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부활승리의 놀라운 비밀을 강하게 선포하실 때에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위로와 치유와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에서 가정에서 치료받는 주님의 귀한 권속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기억하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자 마다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찬양대와 예배를 위하여 헌신 하신 모든 재직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 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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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주일예배 설교 종려주일 설교 <겸손한 왕>

 

제목 : 겸손한 왕 말말
마씀 : 눅 19:28 ~ 40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누가복음 19:28-40.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눅19:28).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죽음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앞서서” 가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획하고 실행해온 구속사를 드디어 완성하는 마지막 주에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앞서서 가신 것입니다. 고난의 주로 오셔서 마지막 고난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봅시다.

첫째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왕이십니다. 28-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2km 떨어져 있는 베다니에서 아침을 드시고 떠나시면서 예루살렘과 베다니 중간에 있는 벳바게라는 작은 동네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저 동네에 들어가면 입구에 나귀 두 마리가 묶여있는데, 그 중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어린 나귀를 끌고 오라. 주인이 왜 푸느냐 물으면 ‘주께서 필요해서 쓰려고 하신다’ 하면 순순히 내어줄 것이다.”

예수님은 벳바게에 가보지도 않으시고 이 간단한 사건에서 7가지 사실을 정확히 알아맞히셨습니다. 첫째, 동네입구에 나귀가 있고, 둘째, 두 마리가 있고, 셋째, 그 중 한 마리는 사람이 탄 적이 없는 새끼나귀이며, 넷째, 나귀가 매여 있고, 다섯째, 매인 것을 풀면 주인이 왜냐고 물어볼 것이며, 여섯째, 주께서 쓰시겠다 하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을 것이며, 일곱째, 그 주인이 순응한다는 것입니다. 7가지 사실이 한 사건에서 우연히 다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정확히 계산해 내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다 아셨을까요? 이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 정도가 아니라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신 전지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도, 형편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답답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으면 예수님께 여쭤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겸손한 왕이십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 위에 얹고 예수님을 그 위에 앉으시게 했으며, 또한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서 예수님이 타신 나귀가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왜 그들이 이토록 예수님께 사랑과 존경을 보였을까요? 심은 대로 거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교제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웃으며 “저 자는 죄인들의 친구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란 자가 어떻게 저런 죄인들과 사귄다는 말인가!” 했지만, 그 말 그대로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사랑하셨고, 불쌍한 자를 돌보셨고, 병든 자와 죄인취급 받던 사람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의 이런 일관된 모습을 보며 감동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강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겉옷을 벗어 나귀 위에 올려 드리지도, 길에 깔아드?層?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사랑과 존경을 보여주셨더니, 제자들도 사랑과 존경을 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공부도 못한 갈릴리 어부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시고, 인간의 소중함과 가치를 보여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보람된 삶을 가르쳐주시고,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한없이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를 귀하게 보지 않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귀하게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소중히 여기며 찬양하며 섬기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주위의 연약한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신 전능자이십니다. 37절에 보면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복음서들을 참고해 보면, 그들은 바로 지난주에 베다니에서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요12:17).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고 하니 나사로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 몰려와서 찬양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찬양을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앉은뱅이를 일으켜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문둥이 시몬이 낳았고 마리아의 동생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그들이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나서서 찬양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능력이 부족해도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십니다. 영적, 육적으로 병들었던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풍요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 나아와 부르짖으십시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께서 원하시면 내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여, 역사하옵소서. 호산나, 지금 구원하소서.” 그분에게 다가가면 그 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영적 체험을 하려면 예수님께 와야 합니다. 예수가 소망이요, 예수가 생명이요, 예수가 문제의 해결책임을 깨닫고 그분을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만나 대화하시면 그분이 우리의 삶에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만 들어도 감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은 날부터 오늘까지 그분과 가까이 살면서 온갖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 체험이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니까, 주님이 오실 때 환호성을 지르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께 오셔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더 가까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2:13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나를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육적, 영적, 심적, 경제적, 인간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외치며 종려나무를 가지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시편 118:24-29을 첫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서 형통케 해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일부를 생각하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찬송한 것입니다.

스가랴 9:9을 또 인용했습니다.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군대를 이끌고 갑옷을 입고 준마를 타고 칼을 빼들고 오셨다면 누가 감히 옆에 접근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능력자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지난 3년 동안 인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온전히 주셨던 바로 그분이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나타나셨기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면서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분께 다가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권세와 겸손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이 교만하여 힘을 과시하면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께 겉옷을 벗어 가시는 길에 깔아드렸습니까? 온갖 기적을 행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겸손하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권세를 가진 분이 계십니까? 돈이 많은 분이 계십니까? 지식이 많고 학위가 높으신 분이 계십니까? 인기가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처럼 겸손하십시오. 능력이 많을수록 겸손하면 더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반면에 힘이 있을수록 교만하여 남을 탄압하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수록, 은혜를 주실수록, 높여주실수록 예수님처럼 겸손해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들이 오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39절) 라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매우 속상하고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를 지를 것이다.” 하셨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자로 오셨는데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했을까요? 그들은 율법주의자라 따지는 것이 많았습니다. 구원자가 나타났으면 주의 날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텐데, 뭘 그리 따지는 게 많습니까? 그들은 법도 많고 조건도 많으니 속상한 겁니다.

그들은 또한 완벽주의자들이었습니다. 남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그것을 문제 삼아 남도 고생시키고 자신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위선자들입니다. 겉과 속이 다릅니다. 결국 예수님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못마땅해 여겼습니다. 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에게는 위기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수님에 대하여 개인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분께 엎드려 절하든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이 있으시고, 모든 죄인을 사랑하여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며 묵상하며 고난주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이제 한 주 동안 우리 때문에 고난을 받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고난이요, 내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한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능력과 소망과 미래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영광의 왕께서 우리를 위하여 겸손하게 오신 것과, 그분의 찢기심과 피 흘리심을 묵상하며 감사하며 성찬을 받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건강을 얻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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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자가의 도

주님은 오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만세를 부르며 열광적으로 주님을 환영하였다. 이렇게 예루살렘에 입성한 주님은 참으로 바쁜 한 주간을 지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해서 5일간의 바쁜 한 주간의 수난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성금요일 십자가를 지시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가진 고통을 다 겪으시고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7마디를 남기시고 운명하셨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요 기독교 복음의 진수요 핵심이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말씀하였다. 그럼 십자가가 어떻게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지 묵상해 보려고 한다.

1)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요 표이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몸으로 나를 위해 내가 죄 값으로 고통을 당하고 매를 맞고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할 것을 대신 짊어지시고 대속의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멸시와 천대는 말할 수 없이 컸다. 그가 당하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과 영적 고통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주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통을 살펴보면 금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6시간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 주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다 당하셨다. 주님이 당하신 고통은 육체적인 이상으로 정신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죽을지언정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던 베드로까지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자 뿔뿔이 흩어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는 아픔이 더 컸다.
한 걸음 더 나가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영적 고통과 절대고독을 체험하셨다. 우리의 죄 값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당하시는 고통이 너무나 괴로워 '내가 목마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울부짖었다. 왜냐하면 잠시 동안이지만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고 계셨기 때문이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극치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시며 공의를 원하시는 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고 죄를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죄를 반드시 벌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엄한 심판과 진노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십자가는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주신다. 만일 하나님이 공의로 다스리시고 심판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자가 한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담 이브가 지은 죄성이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모순없이 다 이루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도 사랑하시고 우리가 원수될 때도 사랑하시며 우리가 죄인될 때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세상 사랑은 내가 건강하고, 잘 살고,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때 사랑하지만 내가 병들고, 가난해지고, 힘이 없고, 버림받게 될 때는 뒤돌아서는 냉정한 사랑이다. 변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부모가 못나고 병약한 자녀를 더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듯이 우리가 연약하고 병들었을 때도 더욱 사랑하시는 사랑이다.

3)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승리였다.

히브리서에 보면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참 소망을 주셨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월남전에서 살아 남은 미공군장교 프레드 체리(Fred Cherry)는 그의 수기 피(Bloods)에서 이런 이야기를 썼다. 그의 비행기가 격추되어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되자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로병들은 '하노이 힐튼 호텔'이라 불리는 수용소에서 날마다 심한 심문과 고문을 당하면서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한 가운데서 누군가가 고안해 낸 벽을 두들기는 통신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날마다 그들이 주고받은 신호가 있었는데 그것은 C자였다. 그것은 Christ, Cross 또는 Church의 첫 글자가 되는 것으로써 주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교회를 바라보라는 말이었다. 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리뱀을 쳐다보았을 때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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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 주일대표기도문


저희를 지으시고 주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다스려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드리나이다.

감사 부족한 저희들을 주님께서 사랑해 주시니 거룩한 성일을 허락 하셔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시니 감사 드리나이다.

이 시간 저희들이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갖게 하시고,

거짓없는 진실된 마음을 주시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사, 영광돌리나이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은 주의 뜻대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들은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주님의 품을 떠나려고 애쓰며

세상과 불의와 타협하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는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자비하신 하니님 아버지 !

이제 저희들과 죄를 제거해 주시고 자비로써 저희들 마음에 성령의 불을 붙이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돌 같은 마음에 새로운 마음을 허락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따르며 즐거워 할 수 있는 귀한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 하나님 !

우리로 하여금 시작되는 한 주간도 내내 감사하며 보내게 하여 주시고

늘, 매일매일 아침 새벽마다 기도로 준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도 더욱더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섭리를 더욱더 깨달아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이번 주에는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실까 기대하며 살게 하옵소서.

한 주를 보내는 이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능력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옵니다.

이 시간 온 마음과 정성으로 예배하게 하시고

육신의 병으로 고통당하는 성도에게 건강과 힘을 주시고

믿음이 부족한 성도에게는 굳세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나온 성도에게는

주님, 이 시간 다 해결 받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사정이 있어 예배에 함께 참여치 못한 사랑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시고

다음 시간에는 모두 나와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은혜 나누는 복된 시간을 허락해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사랑합니다.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를 축복하옵소서.

오늘 단에 서서 주님의 귀한 말씀을 증거 하실 목사님에게

신령한 능력과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한 말씀 한 말씀마다 주님의 영광 드러나게 하시고

주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종으로 삼아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힘과 기쁨이 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진정 자유 함을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찬양 받기를 즐거워하시며,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준비한 찬양을 흠양하시고,

부르는 성가 대원들이나 이를 듣는 모든 교우들의 가슴 가슴에

한결 같은 감격을 주시고 은혜로 채워 주시옵소서.

오늘 이 예배를 온전히 주님께서 주장하셔서

마치는 시간까지 주께서 인도해 주시옵고

하나님이름으로 축복하옵시고

교회의 머리이시며 모든 영혼들의 생명 되시는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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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송구영신예배 빛의 은혜가 가득한 새해(잠6:20-24)

말씀 : 잠6:20-24

제목 : 빛의 은혜가 충만한 새해

1.빛의 은혜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또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새롭게 밝아온 새해에도 여러분과 가정과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과 여러분들의 자녀와 우리가 교회와 이 나라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이 온 땅위에 자유와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옆에 분들과도 축복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화와 건강과 풍성함이 넘치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희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 속에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건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냥 희망과 위로를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소망과 위로가 있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 속에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잠4:18절 보세요.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보세요.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돋는 햇살, 아침 햇살이지요. 어둠을 뚫고 태양이 솟아오를 때처럼 마침내 빛의 은혜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태양이 점점 떠올라 마침내 온 세상이 말 그대로 대낮같이 밝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빛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길입니다. 의인이 누굽니까? 주님을 따르는 자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따른다고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빛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빛과 같은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말씀을 등불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려면 오직 말씀따라 가야 합니다. 그게 가장 안전한 길이고 복된 길이고 빛과 같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길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빛의 은혜를 누리려면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빛을 향해 가지 않고 어둠을 향해 가면서 빛의 은혜를 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과연 빛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생명의 길로 진리의 길로 은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빛입니까? 오직 말씀 밖에 더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무엇이 인생의 등불이 될 수 있습니까? 과학이 등불이 될 수 있나요? 지식이나 문화나 철학이 등불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떻게 생명의 도를 압니까? 어떻게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압니까? 어떻게 영적 정신적 윤리적 육체적 물질적 모든 문제를 알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없잖아요.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셔서 우주만물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고 하실 수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오직 전지전능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주만물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우주와 생명과 인간이 어떻게 출발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의 실상은 어떤지,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갔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시고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래서 그걸 알려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우리의 완전하고 유일한 등불인 것입니다.

오늘 23절을 보겠습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보세요.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는 생명의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에 보면 사람들이 뭐 좀 안다고 속된 말로 까불고 있습니다. 뭐 좀 알게 되었다고 교만해져서 꼴난 인간의 이성과 지성과 경험을 성경위에 두고 그래서 성경을 아예 무시하거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 멋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적용하며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할 수 있다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합니까? 이 광활한 우주만물 속에서, 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기들이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데, 하나님이 훅 불면 한방에 훅 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런 어리석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정말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귀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세상 물결에 휩쓸려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유일한 생명의 말씀인 주님의 말씀을 등불로 삼고 천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잘 달려가 생명의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복된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오직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을 등불로 삼았으면 이제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안 그래요? 말씀을 등불로 삼고 그걸 따라가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습니까?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지 않습니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만 말씀말씀 하면서 안 따라가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유일하고 완전한 등불인 말씀을 따라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우리의 심비에 완전히 새겨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나를 인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말씀이 내 심비에 콱 새겨져 있어야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말씀이 내 마음에서 희미해지지 않고 그 말씀 따라 살 것 아닙니까? 만약 말씀이 내 영혼 속에서 희미하고 도리어 세상의 것들이 각인되어 있으면 말씀따라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것을 따라 살게 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내 마음 속에 말씀이 새겨져 있지 않고 세상의 돈과 명예와 세상 즐거움과 부귀영화가 새겨져 있다면 무얼 따라가겠습니까? 말하나마나 세상 따라 가는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 21절을 보십시오.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여기서 새긴다는 말은 말그대로 절대 지워지지 않도록 돌에다 철필로 새기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심비에 새겨 넣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세상 즐거움이나 향락이나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말씀이 희미해지지 않고 자신을 인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말씀을 심비에 새겨 넣음으로 환난이나 핍박이나 조롱이나 그 어떤 시험 앞에서도 그 말씀이 자신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네 목에 매라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가까이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이 눈앞에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그냥 말씀이 항상 눈앞에서 어른 거려 결코 딴 짓을 못하고 늘 말씀을 따라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아비의 명령, 어미의 법이란 물론 부모님 개인적인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죽어도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지킨다는 것은 말씀 그대로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나 세상 즐거움에게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 오직 말씀 안에서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잖아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인데 그 안에 있어야 생명의 은총을 누릴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올 한해를 살아갈 때에 오직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말씀이 심비에 콱 새겨져서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말씀 안에서 말하고 말씀 안에서 살아감으로 이 죄와 무지속에 있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상황과 도전과 위협과 왜곡된 가치관을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위로와 소망과 승리를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말씀 안에 살아갈 때 승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 안에 살아가는 자는 분명히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22절을 보겠습니다.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보십시오.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에 그 말씀이 너를 인도할 것이다. 잘 때에 보호한다.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말씀이 우리 심비에 새겨져 있으면 심지어 우리가 잠이 들어 있어도 그 말씀은 잘들지 않고 우리를 보호합니다. 말씀과 은혜가 우리 심비에 새겨져 있으면 잘때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칩니다. 잠자리가 평안합니다. 꿈도 행복한 꿈이 꿔집니다. 그러나 심비에 더럽고 추하고 악한 것이 새겨져 있으면 마귀의 꿈을 꾸게 됩니다. 깨어 있을 때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깰 때에 더불어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 그대로 말씀이 심비에 새겨져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것이 우리를 인도하지 않습니까? 우리 심령속에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새겨져 있으면 그 말씀이 나의 생각을 통제하고, 나의 말을 통제하고, 나의 행동을 통제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보호하셔서 우리를 거짓과 어둠과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나를 인도하고 보호함으로 생명의 사람, 진리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4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무엇이 너를 지킬 것이라고요? 명령, 법, 훈계 즉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고, 악에서 지켜주어 생명의 길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심비에 콱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감히 어떤 어둠의 세력이 속된 말로 까불겠습니까? 설령 까불어도 한방에 때려 눕힐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교묘하게 유혹하고 속삭여도 대번에 알아채고 사탄아 물러가라 소리치며 쫓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과 진리와 의가운데 살아가도록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위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밝아온 이 새해에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정말 우리 인생의 유일하고 완전한 등불이며 빛이며 진리이며 안내자이며 보호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유혹과 도전과 시련과 환경과 상황을 주님의 권능과 지혜로 이기고 생명의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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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가정예배 > 은총의 좁은 문 [가정예배 365 ]

찬송 : 318장

묵상 : 잠언 16:1-3(구약926쪽)

사도신경고백

찬송 : 270장

기도 : 가족중


본문: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 13:24)


말씀: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을 가는 인생은 마침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지만 좁은 길을 따라 좁은 문을 지나는 사람은 그문을 지날 때

마다 천국의 세계가 환하게 다가옵니다.


그 첫째 문은 그리스도의 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

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4장12절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

라]고 단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

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두며 예수님 중심으로 나갈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

다.


둘째 문은 성령의 문입니다. 성령의 문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

신 성령세례를 받고 마음 속에 성령충만하여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

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하늘나라 영광 길은 더 넓어지고 천국

의 광채는 더 환해지며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마음 속에

넘치는 것입니다.


셋째 문은 성결주의의 문입니다. 성령충만하여 나아가면 그 다음에는 성

결하게 하는 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8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성결의 문을 지나

는 사람은 추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자리에 같이 앉 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서 성결케 함으로 하나 님과 대화하고 주 안에 깊이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용기 를 얻어 이 문을 들어선 사람에

게는 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계시와 권능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좁은 길의 마지막 문은 (그 발 앞에 엎드리는 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전적으로 의뢰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상적으로 보

기에는 바보스럽고 미련하고 아무것도 없는 생활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하늘나라의 화평이 넘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

에게 천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좁은문을 지나 좁은 길로

가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살

게 되는 은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저희가 고통스럽고 어려워도 오직 주님만 좇3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시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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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주일예배설교


추수감사절의 감사

신명기 16:13-17

매년 가을이 오면 우리는 붉은 단풍잎과 황금물결을 이룬 들녘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또한 이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추수의 감사를 드리는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곡식으로 감사를 드리지는 않아도 지난 시간동안 돌보아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며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이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드리는 우리의 삶의 제사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왜입니까?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십시오. 1년이라는 한 해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중 호우로, 태풍으로 재난을 당하여 죽거나 실종되었습니까? 그 중에는 일가족이 또는 생매장된 가족도 있었고, 마을 전체가 가옥이 파괴되고 옥토가 자갈밭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그 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올바른 깨달음과 감사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금년에도 저와 여러분을 한 해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의 감사한 일들 소개(주보 5면), 일상의 감사/ 시詩 2007

특별히 한 일이 없는 한해였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특별히 슬프거나 좋았던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사로 기적을 이루는 삶을 소원했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지만 일상의 감사를 절감하는 한 해였습니다.

모든 것 하나에게도 감사합니다.(중략)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금년 추수감사절은 이렇게 지키지만 내년에는 지킬 수 없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봅니다. 우리가 한 해 한 해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복주심의 결과요, 무한한 영광이요 축복이요 찬양을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는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감사와 축복의 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추수하여 저장할 수 있는 복을 주셨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복 주셨습니다. 옛날 한 왕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요리사를 불러 상을 주려고 하니까 “임금님 요리는 기술일 뿐이고 야채를 제공한 사람의 공이 더 큽니다”라고 요리사가 겸손하게 말하자 왕은 야채장수를 불러서 상을 주려 하니 야채 장수도 “정작 상을 받을 사람은 야채를 재배한 농사꾼”이라고 말했다고 했지요? 왕은 다시 농사꾼을 불러 치하하며 상을 주겠다고 하니 농사꾼은 말하기를 “저는 그저 씨를 뿌리고 손질만 했을 뿐이지요. 때에 따라 비를 주시고 햇빛을 내려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거두어들이고 저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밭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니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궁리 끝에 그래 내가 이렇게 하리라. 작은 곡간을 헐고 큰 창고를 지어서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많은 곡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궁리 끝에 그는 손뼉을 치면서 내 영혼아 내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이 없었습니까? 감사, 맞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자가 다 이와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도 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막절 곧 추수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회상하는 것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절기는 광야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초막에 거하는 것은

① 번영의 한 가운데서라도 그들의 불행한 날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애굽에서의 고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의 생활을 잊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고통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국의 침략에서 벗어났을 때 전쟁 기념비를 세운다든지 독립기념관을 세워 잊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의 축복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알고 더욱 소중히 여기며 지켜야 할 것을 다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 주시는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앞으로도 하나님은 보호하시고 지켜 주실 분임을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요 동생인 유다는 유다서에서 그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자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 것으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도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지켜주시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지키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것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③ 땅의 소산물에 대한 기쁨을 그 따뜻한 감사의 감정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소득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복 주심을 날마다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④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으나 나그네 생활은 계속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게 되고 결국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현실적으로 나그네 생활을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삐뚤어진 죄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이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추수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1. 공동체 전체가 지켜야 합니다.

14절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한 사람도 소외됨이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참례하여 즐기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함께 나누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잠 19장 17절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볼 때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셔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가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은 내가 선행을 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각 사람이 그 힘대로 예물을 드리며 지켜야 합니다.

16, 17절을 봅시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되 이미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복의 분량을 따라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많이 드렸느냐 적게 드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백만 원을 드릴 힘을 주셨으면 백만 원을 드리고 만원을 드릴 힘을 주셨으면 만원을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헤아려 볼 때 백만 원을 드릴 힘이 있는데 10만원 밖에 드리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원을 드릴 힘밖에 없어 만원을 드렸다면, 아니 그 이상을 드렸다면 하나님은 최선을 다하고 많은 것을 심은 자에게 칭찬과 함께 많은 것을 거두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3.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지켜야 합니다.

우리 다시 15절을 보십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라는 우리를 향한 목적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감사하는 자에게 주실 모든 복을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는 것은 마치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정한 수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그런 수의 개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랄 지방으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앞에서 살 때에 그 땅에서 농사를 하였는데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면 이와 같이 복을 받습니다. 이방 사람이 시기할 정도까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며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지키는 자들에게 이삭의 복을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이삭이 받은 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더 크게 감사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크게 더 많이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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